“전화해.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놀자고. 오늘은 엄마랑 놀아.”
“엄마랑 노는 건 재미없어. 엄마는 엄마 마음대로만 해?”
얼마 전 친구 집에 놀러가겠다는 아이를 너무 늦었다는 이유로 가지 말라고 했더니 아들이 바로 항의했다.
“엄마는 너의 보호자야. 엄마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너무 늦어서 그 집에 실례가 되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어.”
“유치원 끝나고 학원 가고, 약속시간이 늦을 수밖에 없단 말이야.”
아이는 계속해서 자신의 입장을 고집했다.
“그래도 오늘은 안 돼. 좀더 일찍 끝나는 날 만나.”
아이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계속 짓더니 마지못해 친구에게 전화하고 약속을 미뤘다.
아이는 요즘 친구들과 함께 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친구들과 서로 각자의 집을 오가며 장난감 정보도 교환하고 TV에서 본 만화 속의 역할을 정해 ‘역할놀이’를 하며 온 집안을 뛰어다닌다.
물론 아이가 또래와 어울려 서로 의견을 조정하며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 저절로 사회성이 길러지고 여러모로 좋아 친구들과 노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바쁜가. 모두들 한두 가지 이상 사교육을 받고 있으니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어렵게 맞춘 약속을 못 지키게 됐으니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아이 키우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하루하루 절감한다. 이제 일곱살이 된 아이는 자신의 주장을 또박또박 이야기하고 부모의 부당한 처사에 논리적으로 항의를 한다. 그동안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했으니 어찌 보면 아이의 이유 있는 항변이 당연한 것이지만 마음 한 구석은 은근히 섭섭하다.
‘아니 벌써 부모에게 반항을! 이제 너도 품안의 자식이 아니란 말이지.’
슬쩍 친정 어머니께 볼멘소리를 했더니 이제 시작이란다. 앞으로 넘어야 할 높은 산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신다.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이제부턴 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상대가 점점 만만치 않게 성장하고 있으니.
‘아들아.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 비록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우리 한번 해보자꾸나. 남을 배려하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너, 타협할 줄 알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너, 스스로 최선을 다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멋진 너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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