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에서 동수(장동건)는 그가 속한 조직이 친구 준석(유오성)이 속한 조직의 보스를 경찰에 밀고한 직후 한적한 한 방파제를 찾는다.
우정과 배신의 상념에 젖은 동수는 ‘바다거북과 조오련 중 누가 더 빠른지’ 말다툼을 벌이던 어린 시절 준석과의 우정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피우던 담배 꽁초를 휙 던져버린다. 어쩌면 소중한 우정마저도 가볍게 버려질 수 있는 삶의 이면을 보여주듯….
4월22일 영화의 촬영지인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항 방파제를 찾았을 때도 파도는 치고 있었다. 다만 방파제 바깥쪽에는 큰 파도가 거품을 물며 달려든 반면 방파제에 가려진 안쪽 파도는 새색시 자태처럼 다소곳했다. 마치 삶의 서로 다른 면처럼….
동수가 쪼그리고 앉아 우정과 배신 사이에서 상념에 젖었던 그 방파제는 그날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이중적인 삶의 경계선을 상징하듯’ 그 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날 대변항 방파제 안쪽 항구의 모습은 영화속의 고즈넉함과는 달리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전날까지 ‘기장 멸치축제’가 열린 떠들썩함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축제기간뿐만 아이라카이. 주말이면 발디딜 틈이 없다 아입니꺼.” 좌판을 벌이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수더분하게 잘도 알려준다.
항구 곳곳에 갓 잡은 멸치를 회를 떠 파느라 부산하다. 아주머니는 5월초까지는 멸치회를 맛보려는 인파가 몰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거든다. “영화 친구 아있습니까, 올해는 그거 때문에 어디서 알고 왔는지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 아입니꺼”라며 씩씩하게 웃는다.
부산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의 대변항은 그리 크지 않다. 항구주변의 어촌과 부둣가 횟집 외에 별다른 유흥시설도 없다. 하지만 한적함에 잠겨 있다가도 때가 오면 역동적인 삶의 활력을 보여주는 동해안 멸치잡이의 전진기지, 그리고 삶의 이중성에 대해 고민했던 영화속 장면이 겹치는 곳.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삶의 진솔한 현장이었다.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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