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논쟁적이다. 여성의 성기, 질(膣·vagina)를 대놓고 말하다니.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다. ‘여성 성기의 독백’이라니.
여기에는 여성 성기에 대한 16개의 에피소드가 담겨져 있다. 200여명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생생한 육성이다. 화자는 백인부터 흑인까지, 상류층부터 무지렁이까지, 10대 소녀에서 70대 노인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자기 성기가 경험했던 비밀들을 ‘직설적으로’ 말한다.
여기엔 보스니아 내전에서 성폭행 당한 여성의 절규가 있고, 첫 월경을 치른 소녀의 떨림이 있다. 남편의 요구로 음모를 없애야 했던 여성의 탄식이 있는가 하면, 70세가 넘어 자신의 성기를 처음 봤다는 할머니의 고백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남자 없이 스스로 즐기는 법을 배운 여성의 내밀한 체험기도 등장한다.
불경스럽기 그지없는 이 책은 1997년 뉴욕에서 초연된 연극을 각색한 것이다. 강도 높은 파격적 언사가 성에 개방적인 미국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같은 해 오프―오프 브로드웨이 히트 작에 돌아가는 ‘오비상’을 받기도 했다.
이것이 얄팍한 선정성으로 얻은 반짝 인기라고 지레짐작할 일은 아니다. 메릴 스트립, 안젤리카 휴스턴, 후피 골드버그 등 유명 여배우들이 앞다투어 출연을 자청했다. 외신은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공연장이 ‘여성의 해방구’였다고 전한다. 그 열광은 대서양을 건너 영국과 유럽까지 감염시켜 현재에 이른다.
미국의 대표적 페미니스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서문에서 열광의 이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말하기를 꺼리는 오랜 금기에서 여성을 해방시키게 만드는 용기와 정직 때문이다.” 가부장 전통의 뿌리가 깊은 우리 사회에서도 이는 유효할 것인가? 이 작품은 18일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려진다. 원제 ‘The Vagina Monologues’(1998년).
이브 엔슬러 지음, 159쪽 7500원 북하우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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