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환 조영철 외 지음
456쪽 1만5000원 당대
자본의 국경 없는 이동을 초래한 금융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국민 국가가 경쟁력을 지키려면 사회적 형평성을 일부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강력하다. 다시 말해 글로벌 자본의 요구와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경쟁국가’만이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영미형 자본효율 극대화의 사고방식은 지난 3년 간 한국의 경제개혁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했고,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주류의 언론과 학자 그리고 관료들에게 하나의 신앙처럼 되어 버렸다.
예상대로 비정규직 취업자는 전체 취업자의 50%를 넘어섰고, 현재적·잠재적 실업이 만연하고, 중산층이 파괴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이러한 해체의 과정 속에서 일자리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엄혹한 구조조정을 견뎌내면 새 살이 돋아날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나아가서는 한국민의 절대 다수는 이러한 고통을 통해 ‘고임금―고부가가치’ 경제의 길목이 열릴 것으로 염원했지만, 한국을 포위한 글로벌 자본은 여전히 ‘저임금―저부가가치’로의 후퇴가 한국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미형 시장개혁은 한국민의 염원을 담아낼 수 없는 그릇이라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고, 대안적 경제체제에 대한 때늦은 모색이 요구된다.
제도경제연구회에 참여한 경제학자 11명이 지난 2년에 걸친 공동연구와 토론의 성과물로 펴낸 ‘미국식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적 대안’은 이러한 시대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이들이 주목한 대안성은 시장과 자본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후 독일과 북구 여러 나라, 그리고 일본에서 현실화되었던 견고한 성장과 복지국가의 결합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바로 이 때문에 지면의 상당부분은 미국식 자본주의와 대립적 구도에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가 기본을 크게 훼손하지 않은 채 금융 세계화와의 긴장관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성공의 극치로 인해 자멸할 것이고, 사회적 시장경제는 뿌리깊은 연대주의의 전통과 다양한 사회적 기제로 인해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은 어디까지나 전망일 뿐이다. 단지 분명한 것은 시장과 사회의 이중운동이라는 역사의 틀에서 볼 때, 한쪽의 일방적 승리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 저자들의 지적 양심이 잘못은 지적할 수 있어도 대안을 개진할 만한 배포를 허락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세를 거부할 수 없다는 국민경제의 제약이 ‘줏대 있는 세계화’의 모색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책에는 다양한 안전장치의 지혜가 곳곳에 숨어 있다. 마이크로한 경쟁논리에 포획된 이 땅의 지식인, 사회인, 직장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찬 근(인천대교수·국제금융)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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