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나 동네(꺼벙이, 요철발명왕), 서당과 동네(맹꽁이 서당, 신판 오성과 한음) 등 명랑 만화의 일상적 공간은 ‘왕십리 종합병원’이라는 일상적이지만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비일상적 공간으로 변모했다.
전형적인 말썽꾸러기 주인공들은 개성을 지닌 여러 인물들로 분화되었다. 여자만을 밝히고 늘 수술에 실패하는 한호색 선생, 폼은 잡지만 단 한번도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 웅담 선생, 의학적 실험에 모든 것을 바치는 강유희 선생, 엄청난 힘의 소유자로 아이들을 싫어하는 수간호사, 한번 손을 대면 죽은 자도 살려내는 치료지왕, 분열된 자아를 지닌 정신과 배호일 선생, 조직의 ‘넘버 2’이지만 지금은 병원 지하의 우물에서 도를 닦고 있는 김구, 동네 삐끼였다가 묘한 표정의 시신에게 감화되어 병원에 온 걸구 등.
‘허풍’이라는 만화경을 통해 존재하는 이들 모습의 실체는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왕십리 종합병원’의 여러 인물들은 밉지 않은 허풍으로 플롯과 플롯을 이으며 서사를 이끌어간다. 하지만 이 허풍도 역시 2000년대 적이다. 박수동의 ‘번데기 야구단’에는 번데기를 먹으면 힘이 나거나 공에 도전장을 묶어 상대 학교에 보내는 등의 70∼80년대적 상상력에서 나온 허풍이 존재한다면, 김진태의 만화에는 영화 매트릭스의 카메라 앵글을 원용하거나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등장하는 등 2000년대적인 상상력이 존재한다.
허풍과 같은 해프닝에 기댄 웃음은 외줄타기처럼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김진태는 슬랩스틱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거기에 경도되지는 않는다. 다채로운 상황이 제시되고, 하나의 이야기를 기본으로 세부적인 해프닝이 배치된다. 이를테면 박수동식에 가깝다.
‘왕십리’라는 수식어도 매력적이다. 그 공간은 마치 일상이 정지된 느낌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이 지닌 어감과 비교하면 ‘왕십리’라는 공간 수식어는 현실에 존재하는 왕십리가 아니라 어감 그대로 허풍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읽힌다.
또한 ‘병원’이라는 공간은 신경증적인 일상에 대한 우화로 읽혀진다. 그가 보여주는 과장과 허풍은 병리적인 현상으로 가득 찬 2001년 대한민국에 대한 풍자적 웃음이다. 현재 ‘왕십리 종합병원’은 만화잡지 ‘부킹’에 연재 중이고 단행본 3권 째가 출판됐다.
(만화평론가)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