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다섯 번째 창작집 '양철 지붕 위에 사는 새'(문학동네)는 IMF 이후 소시민, 노동자 계층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소설집이다.
중편 '양철 지붕 위에 사는 새'의 주인공 김씨는 병든 아내를 두고 자신의 욕망을 좇는 해고 노동자. 김씨는 밀린 카드값을 독촉해대는 대기업 카드사의 횡포에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하고 손바닥만한 노점상에 들이닥친 조폭들에 맞서 악다구니를 펼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바람에 들썩이는 '양철 지붕'이란 불안한 현실과 곧 이어지는 아내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지만, 소설의 후경을 장식하는 구제금융 이후 노동자의 삶은 작가가 현실을 어떻게 보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목재 공단에 구조조정 바람이 휘몰아치고 정리해고 1순위로 사표를 던지고 나온 김씨. 그에게도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바라며 '노도처럼 달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친구들조차 사채놀이와 부동산 투기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김씨는 환멸에 젖는다.
87년 이후 의식화의 길을 걷던 노동자가 구제금융 시대를 거치면서 보수·안정층과 '노동계급'에서조차 퇴출돼 영세자영업자 등의 빈민층으로 양분되는 현실이 가슴을 파고든다.
또다른 중편 '교미하는 사마귀의 숲'은 섬뜩한 제목만큼이나 위악(僞惡)에 가득찬 소시민적 일상을 그리고 있다.
삶이 견딜 수 없이 권태롭게 여겨질 때 중년의 약국 주인인 '나'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다. 화자는 '능소화'라는 아이디를 가진 여자를 만나고 결국 그 여자와의 정사 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떠돌아다닌다는 것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된다.
'교미하는 사마귀'라는 동물성에 빗대어져 있는 중산층 가장의 욕망은 보수쪽으로 회귀하면서도 자기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소시민들의 삶을 끔찍한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창작집은 여러모로 작고한 소설가 김소진의 '장석조네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구수한 만연체에 섞인 들척지근한 우리말도 그렇지만 가족이나 동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주변인들의 눈물겨운 삶도 비슷하다. 다만 만연체 문장이 호흡을 방해하는 수식어로 끊길 때가 많고 결론 부분이 조급한 인상을 준다는 점은 아쉽다.
김한수는 1988년 중편 '성장'으로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했으며 '봄비 내리는 날' 등 4권의 창작집을 가지고 있다.
김한수는 이번 창작집 말미에 시 4편을 끼워넣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양철 지붕 위에 사는 새/김한수/문학동네/7500원/276쪽>
안병률 <동아닷컴기자>mok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