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삶과 문화-시인 등단까지 뒷돈 오가나…

  • 입력 2001년 5월 7일 18시 30분


유수한 시 월간지가 ‘돈을 받고 신인을 등단시켰다’는 스캔들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15일 창작과비평사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방랑객’이란 ID로 올라온 글이 발단이었다.

이 글은 “이 잡지가 4월초 발표한 신인상 수상자 2명이 당초 예심에서 탈락했으나 패자부활전 형식으로 재심사에 올라가 당선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잡지 관계자가 최종심에 올라간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당선되면 잡지 발전명목으로 300만원을 내라고 요구했고, 이를 거절하자 본선 진출작품을 탈락시켰다는 ‘소문’을 전했다.

중견시인이기도 한 이 잡지 책임자는 이런 주장에 대해 “당선되지 못한 응모자가 유포시킨 황당무계한 모함”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응모자 160여 명 중 본심에 올라간 작품 대부분이 젊은 취향의 가벼운 내용이었다”면서 “서정성이 높은 작품을 찾으려고 재심사했으며 그 경위를 지면을 통해 모두 공개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기자에게 “본심과 예심에 올랐던 후보 10여 명의 연락처를 줄 테니 우리가 돈을 요구했는지 직접 확인 해봐도 좋다”고 말했다.

최근 이 잡지사는 창작과비평사 측에 문제의 글을 게시판에서 삭제해 줄 것을 정식으로 요구했다.

이 사건이 문단에서 회자된 것은 이 시 전문지가 발간된지 10년이넘었고 다수의 시인을 배출한 명성 때문이었다. 매달 2500부를 발간하지만 다른 문예지처럼 오랜 적자를 감수하며 힘들게 운영돼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잡지사는 3월 시인과 출판인들에게 간곡한 어조로 기금을 모금한다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군소 시 잡지인 경우 작품 게재를 통한 등단을 조건으로 돈이 오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잡지를 상당량 구매해 달라는 조건을 거는 경우가 있고, 아예 인쇄비 명목으로 몇백 만원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문학이 극도의 불황을 겪는 와중에도 많은 시 잡지가 운영될 수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에서 발간되는 시 잡지는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문예지 127종 중 3분의 1 가량인 30여종이며, 이를 통해 등단한 시인은 5000명이 넘고, 시 문학상은 52종에 이른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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