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 한국학의 미래’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가 7,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열려 최근 한국학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21세기 한국학의 발전방향을 모색했다.
동아일보와 한국국제교류재단, 정신문화연구원 등이 공동 후원한 이번 회의에는 로버트 스칼라피노 버클리대 명예교수(비교정치학), 제임스 팔래 워싱턴대 교수(역사학) 등 미국 측 한국학 전문가들과 이상주(李相周) 정신문화연구원장 등 국내 학자들이 대거 참석,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치학 분야 발제자로 나선 데이비드 강 교수(다트머스대)는 “한국이라는 지역연구의 시장성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냉전 종식 이후 지역연구의 유용성은 약화되는 반면 이론 및 계량화 연구의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강 교수는 “한국인 2세와 유학생들은 대개 박사학위 취득 후 본국으로 돌아가 연구활동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며 미국 내 한국 정치학의 ‘공동화’ 현상을 우려하기도 했다.
초강국 미국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은 한국의 고유한 경험 자체보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론적인 뼈대를 쌓고 일반화시키는 데 국한된다. 한국학 권위자로 평가받는 미국학자들 상당수는 중국 일본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경험을 빌리는 이들. 이같은 이유에서 이들 중 일부는 한국내 학자들로부터 ‘비정통 아마추어’라는 극단적 평가를 받곤 한다.
미국내 한국학자들에게 필요한 영어판 개괄서나 1차 자료는 일본학 및 중국학에 비해 형편없이 빈약하다.
이홍영 버클리대 교수(정치학)는 “하버드대의 동료교수가 ‘한국학자들은 우수한 데 왜 한국의 가치관이나 가족문제 등에 관한 축적된 자료는 빈약한가’라고 질문을 해 얼굴이 화끈거린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클라크 소렌슨(워싱턴대·인류학) 교수는 ‘한국학 연구의 최대 장애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랭귀지(한국어)”라고 답했다.
미국내 한국학연구의 물꼬를 튼 것은 93년 국제교류재단의 재정지원. 지금까지 24명의 한국학 전공교수를 배출하는 등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학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왔다는 평가다.
그러나 중국학 일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반이 취약한 탓에 최근엔 재단의 재정지원을 확보해놓고도 마땅한 한국학 교수를 채용하지 못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버클리대 역사학과의 경우 한국학 교수를 선임하기 위해 세 차례나 후보 공개강좌를 열었지만 실패했다. 학계에서 한국전문가 ‘기근현상’이 심해지자 미 언론들은 한국에 이슈가 생길 때마다 전직 주한 대사들을 단골로 찾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라는 측면에서 한국학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게 이날 참석자들의 평가다. 식민지 경험, 이데올로기에 따른 분단, 전쟁, 민주화, 급속한 산업화와 외환위기 등 미국 내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 한국은 학문의 ‘실험장’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
이홍영교수는 “한인사회가 팽창하면서 한국학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가는 추세”라면서 “중국, 일본과 인접한 지정학적 중요성을 살려 비교 연구 차원에서 한국학에 접근하는 방향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캘리포니아(버클리)〓박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