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나라 다녀온 사신 최고 한글기록 발견

  • 입력 2001년 5월 8일 18시 48분


◇1624년 쓰여진 '죽천행록' '담헌연행록'에 120년 앞서

죽천 이덕형(竹泉 李德泂·1566∼1645)이 1624년 명나라에 다녀온 과정을 담은 한글 필사본 ‘죽천행록(竹泉行錄·사진)’이 발견됐다. 이덕형의 당시 명나라 방문은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의 즉위를 명나라로부터 승인받기 위한 것이었다.

숭실대 국문과 조규익(曺圭益) 교수는 6월초 서울대에서 열리는 국어국문학회에서 발표할 논문 ‘죽천행록의 사행(使行)문학적 성격’에서 “‘죽천행록’은 현재 전해지는 사행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한글사행록으로 알려진 ‘담헌연행록(湛軒燕行錄)’보다 무려 120년이나 앞서는 최초의 한글본 사행록”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에 따르면 ‘죽천행록’은 당시 이덕형의 수행원 가운데 한 군관(軍官)이 기록한 메모를 이덕형의 집안에 드나들던 ‘허생’이란 사람이 정리한 기록이다.

조 교수는 특히 한문본 사행록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사행 과정의 생생한 모습들이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죽천행록’의 의미가 크다고 강조한다. “한문으로 쓰여지는 공식보고서에서 찾기 어려운 조선 사신들의 굴욕적인 모습들이 이만큼 생생하게 서술된 사행록의 발견은 처음일 뿐 아니라 한글 묘사의 문학성도 두드러진다”는 주장이다.

베이징에 머문 기간 내내 조선 사신들이 겪은 수모를 적은 부분은 당시 조선과 중국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죽천행록’에는 이덕형이 길바닥에 엎드려 출근하는 중국 관리들에게 글을 올리는 장면이나, 중국 관리들이 사신을 희롱하며 황제의 은혜를 아느냐고 질문하자 이덕형이 “황제의 은택이 팔황구주에 사무친다”며 충성을 맹세하는 치욕적인 광경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조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제기되고 있어 ‘죽천행록’의 학술적 가치를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조 교수 논문에 대한 논평자로 예정된 동국대 국문과 임기중(林基中) 교수는 “이덕형의 연행에 관한 한글본 사행록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지만, ‘죽천행록’이 최초의 한글사행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학계에 알려진 한글사행록인 ‘갑자수로조천록(甲子水路朝天錄)’만 해도 이덕형이 사행을 다녀온 1624년에 저술됐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죽천행록’이 완성된 시기를 1647년경으로 보고 있다.

또한 임 교수는 “군관의 메모가 한문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이 경우 ‘죽천행록’이 한문본의 한글번역본이라는 성격이 강하다”며 그 가치에 의문을 표시했다. 아울러 그는 ”조선시대 대(對) 중국 사대외교의 처참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내용도 여러 사행록에 서술돼 있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죽천행록’의 가치에 대한 논란은 학술대회를 통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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