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지는 하늘에서 바라본 서해는 ‘무념무상(無念無想)’, 그 자체예요.”
초경량 비행기 ‘엑스 에어(X Air)’ 기종으로 80여 시간의 비행 기록을 갖고 있는 새내기 여조종사 한미영씨(34·한의사)의 비행 예찬이다. 지난해 봄, 일상 탈출을 위해 ‘인천 송도비행클럽’(www.inchonair.wo.to)의 문을 두드린 그는 순식간에 ‘비행’의 마력에 매료됐다.
이착륙할 때의 짜릿한 스릴, 발 아래에 펼쳐진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의 탈출감, 기체 요동에 따른 불안감, 사방이 탁 트인 공간에서 찾아오는 고요함….
“비행 도중 마음이 평화로워지면서 하늘, 바람, 비행기와 ‘내’가 일체감을 갖게 됩니다. 최소한의 동력으로 최고의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경비행기는 ‘여성용 레포츠’로 아주 제격이에요.”
최근 단독 비행에 성공한 그는 ‘국토횡단비행’과 ‘스카이 다이버’를 꿈꾸며 주말마다 경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최소 동력으로 최고 자유 만끽
한씨와 같은 초경량 비행기 동호인들은 국내에 1000여명가량. 이중 100시간 이상의 비행기록을 보유한 지도조종자 교관이 300여명이다.
무게 225㎏ 이하로 2인승용으로만 제작되는 경비행기는 작고 단순하기 때문에 조종이 쉬운 레저용 항공기이다.
초경량항공기조종자 면허를 받으려면 20시간 이상의 비행기술교육을 받은 뒤 2시간 단독비행 경력을 갖추면 면허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반경 3~5km로 '공역' 제한
한국항공대 송병흠교수(항공운항학과)는 “‘시계비행’만 하는 초경량 비행기는 사고율이 아주 낮은 안전한 기종”이라며 “동호인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면허증도 민간협회에서 자율적으로 발행해 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프로펠러 동력으로 시속 100∼200㎞까지 속력을 끌어낼 수 있는 초경량 비행기는 비행 도중 엔진이 꺼지더라도 날개만의 ‘양력 비행’으로 불시착 착륙이 가능한 것이 특징.
비행 동호인들은 “초경량 비행기가 너무 가벼워 보이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뒤집어지고 엔진이 꺼지면 추락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가질 수 있지만 이는 큰 오산”이라며 초경량 비행기를 ‘날아다니는 낙하산’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활주로 길이가 50∼100m이면 언제든 이착륙이 가능하지만 어디든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허용된 ‘공역(空域)’에서만 비행해야 한다. 공역은 대개 반경 3∼5㎞이며 송도, 안산, 화성, 일산, 대천, 아산, 제천 등 전국에 20여곳이 지정된 상태다.
각 공역내에서는 고도 500∼1000피트로 언제든 ‘자유 비행’이 가능하지만 야간 비행은 금지된다. 국토 횡단 등을 위해 공역을 넘나들 때는 지방항공청에 미리 비행 승인을 받아야 한다.
◇송도비행클럽 정태정 교관-"조종사 제 1덕목은 겸손"
몸체와 날개 길이 6∼10m, 높이 1.5∼2m, 세발 자전거 만한 바퀴 크기, 무연 휘발유 38ℓ의 연료 용량, 고도계 속도계 등 3∼5개의 계기판….
장난감같은 모습을 띤 초경량 비행기는 아파트 40∼50층 높이의 낮은 고도에서 ‘세상’을 굽어살필 수 있는 ‘초미니 슬림형 비행기’다. 해외에서는 꼬리날개가 앞쪽으로 오고, 3층 형태의 주날개를 다는 등 기이한 모습의 초경량 비행기가 많지만 국내에서는 ‘고전형 모델’이 아니면 비행기 등록을 해주지 않고 있다.
국내에 도입된 초경량 비행기는 현재 미국 호주 등에서 생산된 20여종 200여대로 추산되고 있다. 레이더에도 잘 탐지되지 않을 정도로 낮게 비행한다.
▽"조작 쉽지만 과신은 금물"
초경량 비행기는 조작이 간편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조종할 수 있지만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게 중요하다.
1989년 국내 최초로 초경량항공기클럽을 구성해 그동안 수백명의 비행동호인들을 배출한 정태정교관(38·송도비행클럽 대표·사진)은 조종사 제1의 덕목으로 ‘겸손’을 꼽는다.
“상하 좌우 방향의 조종 스틱과 가속기만 조작하면 창공을 쉽게 날 수 있지만 풍향 풍속 안개 등 자연현상을 항상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자신의 비행 실력을 과신하게 되면 엉뚱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지요.”
4000여시간의 비행 기록을 갖고 있는 정씨도 △초속 10m 이상의 강한 바람이 불거나 △ 창공에서 돌풍이 일어나는 경우 △해무나 안개가 밀려와 시계 전방이 4㎞ 미만일 때 △비나 눈이 많이 내려 활주로 노면 상태가 심하게 질퍽거릴 때는 무조건 비행을 중단한다.
초경량 비행기를 직접 몰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의 비행 교육이 필수적이고 2000만∼7000만원을 호가하는 비행기를 단독 또는 공동으로 구입하는 게 좋다. 비행기를 시간당으로 임대해 사용할 수도 있다.
▽동호인 클럽 전국50여개
비행 교육은 전국 50여개 동호인클럽에서 받을 수 있으며 비행 면허를 취득할 때까지 대개 200만∼3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인들은 조종석 옆에 앉아 15∼60분간의 ‘체험비행’(비용 3만∼10만원)을 하면 된다.
<박희제기자>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