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사찰이었던 경기 양주 회암사(檜巖寺). 그러나 안타깝게도 16세기에 사라져버린 사찰. 그 회암사가 400여년 만에 베일을 벗고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 최초의 완벽한 구들 건축물 확인, 세계건축사전에 오를만한 독특한 건축구조물 확인, 초대형 청동 풍탁(風鐸·처마 끝에 다는 풍경의 일종) 출토 등. 아직 절반도 발굴하지 않았는데 국내의 고고계 건축사학 불교미술사학자들을 흥분시키는 조사 결과가 줄줄이 나오고 있다.
현재 경기도박물관과 기전문화재연구원이 3년째 회암사터를 발굴 중이다. 발굴은 2004년까지 진행된다.
회암사는 고려 중기 이전에 창건되어 고려 말과 조선 성종 대에 중창된 사찰.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즐겨 찾았던 곳으로, 1만1000평 규모의 조선 최대 사찰이다.
학계의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참선 수행공간인 서승당(西僧堂) 건물터. 마치 군대의 막사를 연상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이미 세계건축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는 경남 하동 칠불사의 아자방(亞字房)과 그 구조가 유사하다. 그러나 서승당은 칠불사보다 구조가 더 정교하고 규모가 커 학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또한 몇몇 건물터에서는 완벽한 형태의 구들시설도 발견됐다. 이는 유례가 없는 일. 기전문화재연구원의 김무중 연구관은 “회암사의 구들시설은 국내 고건축 사상 가장 규모가 큰 시설일 뿐 아니라 정교하기까지 해 한국건축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출토 유물 역시 예사롭지 않다. 왕실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이 정교하게 조각된 기와조각, 왕실용 최고급 도자기, 출토 예가 없는 분청 향완(香碗), 연꽃을 조각한 불상 대좌(臺座) 등 수 만점. 특히 ‘天寶山 檜巖寺’‘朝鮮國王’ 등의 글이 새겨진 지름 30㎝의 대형 청동 풍탁, 금박이 입혀진 원판형 청동기 등은 회암사의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선 중기 불교를 시기한 유생들의 의도적 방화로 절이 소실됐을 가능성을 확인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발굴 성과다. 김무중 연구관은 “불에 탄 흔적의 유구(遺構)들이 확인된 점, 불상의 불두가 깨진 채로 출토됐다는 점 등등이 이를 입증해준다”고 말한다.
이러한 뜨거운 관심에 고무되어 경기도는 국내 발굴 사상 최초로 회암사 발굴 현장을 일반에 공개해 역사교육의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