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으로 대표되는 무가(巫歌)는 우리 문화의 원초적 뿌리예요. 특히 동해안 별신굿은 무가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그 가치가 뛰어나죠. 누군가 기록해서 남겨두지 않으면 우리의 뿌리는 영영 소멸되고 말 것이라는 조바심에서 제가 나서게 된 겁니다.”
울산대 국문학과 박경신(朴敬伸·48·사진) 교수는 동해안 별신굿 무가를 기록하는데 꼬박 8년이란 세월을 바쳤다. 우리 전통문화의 뿌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 조바심이 박 교수를 오랜 기간 이 분야 연구에 붙잡아 둔 것일까.
박 교수는 8년에 걸친 작업 끝에 1999년 총 12권 분량의 ‘한국의 별신굿 무가(국학자료원)’를 펴냈다. 그 고집스러움의 공로가 인정돼 올해 나남출판사가 제정한 지훈상(芝薰賞) 국학부문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 교수는 1991년 11월 6일∼8일 38시간에 걸쳐 울산 동구 일산동에서 진행된 별신굿의 전 과정을 12권의 책에 수록했다.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식사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꼼짝 않고 현장을 지켜야 하는 강행군을 감행한 것.
신을 모셔오기 전 굿을 벌일 장소를 정결케 하는 ‘부정거리’, 신당에서 신을 모셔오는 ‘상하당맞이’ 등 총 26거리의 굿거리를 녹음해 순서에 따라 기술했다. 사흘 동안 일어난 일을 기록하기 위해 8년이 걸렸다는 사실이 언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무녀들의 춤과 노래, 악기를 연주하는 ‘잽이’들의 개입과 관중의 반응 등 사흘 동안 그 장소에서 오갔던 말과 행동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돼 있어요. 한 번이라도 굿을 본 사람이면 이 글을 읽으면서 현장 모습을 훤히 그려볼 수 있을 겁니다.”
박 교수가 이처럼 현장감 전달에 주력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굿은 무녀들과 마을 사람들의 공동 연출작이지요. 상호작용 속에서 마을 전체를 결집시키는 힘을 갖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무녀들의 모습만을 담은 기록은 반쪽 짜리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그는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무녀가 사용한 독특한 용어 및 표현법, 방언, 바닷가 지방 특유의 민속 등 2만5000여 개 항목에 대해 주석을 달았다. 8년 동안의 작업에서 가장 애를 먹은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무녀들은 굿을 하면서 종종 불교 경전에 나오는 단어를 인용하는데 그 소리의 변천이 워낙 심해 원전을 찾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하나의 주석을 달기 위해 4개월 동안 도서관을 뒤진 적도 있었어요.”
박 교수는 “세인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나 있는 전통 문화가 재조명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면서 “이 때를 대비해 전통문화를 기록으로 남기는데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지훈상 시상식은 1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열린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