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15일은 스승의 날. 1년에 하루쯤은 선생님의 노고를 생각해 보고, 교사들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 보는 날이다. 스승의 날은 언제부턴가 극성 학부모들에 의해 교사나 학생 모두가 ‘부담스러운 날’로 그 의미가 퇴색해 가고, 그같은 논란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아예 휴교해 버리는 학교가 있는 것도 사실. 그러나 이날을 건전하고 뜻깊게 보내려는 학교와 교육 현장도 적지 않다.
▽스승의 날이 괴로워〓요즘 인터넷 교육사이트 자유게시판를 돌아보면 단연 스승의 날 선물이 화두(話頭).
두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고민’이라는 필명의 학부모는 “지금까지는 꽃과 감사 카드를 보내는데 그쳤지만 언제나 ‘내 아이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썼다.
이에 대해 ‘허허교사’ 등 현직 교사들은 하나같이 “비싼 선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응답. 창원 봉림초등학교 박종국 교사는 “제발 이름도 밝히지 않고 ‘선생들이 다 그렇지…’하는 식으로 교사들을 매도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어린이’의 글. “저희들도 다 알아요. 어떤 애는요, 엄마가 와서 선생님에게 돈을 준 뒤로 ‘왕따’당해요. 그 애랑 친했는데….”
▽학교도 쉰다〓15일 서울의 경우 536개 초등학교 가운데 무려 216곳이 휴교한다.
서울 남부교육청 산하 57개 초등학교는 학교장회의 결과 스승의 날 거의 모두 쉬기로 했다. 영등포구 신길동 영신초등학교는 아예 14∼16일 3일 휴교를 결정했다. 이 학교 양희석교장은 “차라리 쉬는 것이 선생님들도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군자초등학교도 14, 15일 이틀간 쉰다. 학기초 전체 학부모들에게 ‘언제를 자율 방학일로 할지’를 물었더니 80% 이상이 14, 15일이라고 대답했기 때문.
중고등학교는 대부분 수업은 하지 않고 간단한 행사만 치른 뒤 ‘은사 찾아뵙기’ 등의 명목으로 조기 귀가시킨다.
▽“우리는 ‘당당하게’ 보내요”〓스승의 날은 과연 이렇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까. 서울 용산구 원효로3가 성심여고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학생들이 선생님께 ‘깜짝 이벤트’를 열어 주는 오랜 전통 때문에 개별적으로 선물을 할 분위기가 애당초 안된다. 지난해에는 교문에서 교무실까지 꽃마차를 태워드렸다. 올해는 방송반에서 선생님들의 옛날 사진과 현재 수업 모습 등을 촬영해 코믹 터치로 편집, 전교생 앞에서 방영할 예정이다. 이밖에 종이장미와 양초, 특별 공연도 선생님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 양초는 ‘나의 세상을 밝게 채워 주는 선생님께 감사드린다’는 의미다.
학생회장 조정은양은 “사제지간의 정이 사라졌다는 말은 우리 학교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정경준·김현진기자>news91@donga.com
◇최종식씨 작품전에 전시-'참 스승' 은혜 그림으로라도 …
“선생님께 진 빚을 이렇게라도 갚고 싶었습니다.”
홍익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최종식씨(41·사진)는 올해 정년 퇴임한 모교 은사 하종현교수(65)를 잊을 수 없다. 그래서 그의 모습을 조심조심 그려 작품전에 내놓았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이브 갤러리’(02-569-9688)에서 10일 시작돼 19일까지 계속되는 그의 인물 데생전. 15점의 작품 중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하교수를 ‘모셨다’.
하교수와의 인연은 최씨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됐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미술학원에서 그를 가르쳤던 선생님의 은사가 바로 하교수였으니 ‘큰 사부님’인 셈.
“그림그리는 ‘기술’보다는 참 예술가가 되는 ‘길’을 가르쳤던 선생님이었습니다. 항상 제자들의 가능성을 찾으려 애쓰시고 격려하셨죠.”
정년 퇴임을 앞두고는 후학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홍익대 기증작품전에 자신의 대표작 10여점을 아낌없이 쾌척한 것. 후배 제자 100여명에겐 1년간 미술 잡지를 무료로 보내주기도 했다. 퇴직금을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돌려줄 준비도 하고 있다.
“선생님에게서 본 참 예술가의 모습을 그리는데 석 달이 걸렸습니다. 선생님의 진면목을 100% 담아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로서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생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美 '스승의 날' 대부분 몰라-선생님 생일-기념일등 더 관심
“생큐, 서(Thank You, Sir).”
미국에도스승의날(Teacher’sDay)이 있다. 미국판 스승의 날은 5월 첫번째 월요일이 낀 주의 화요일. 해마다 날짜는 달라진다. 올해는 8일이었다.
전미 학부모교사협의회(PTA)는 스승의 날이 포함된 주 전체를 ‘선생님께 감사하는 주’로 삼아 존경을 표시하도록 권하고 있다.
스승의 날은 전국교육협회(NEA) 등 교육단체들의 강력한 요구로 1980년 3월7일로 정해졌다가 1985년 지금처럼 5월로 정착됐다.
그러나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어도 이런 날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스승의 날’이라는 특정일에 형식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대신 선생님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 같은 때 작은 이벤트나 선물을 마련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 스승의 날엔 인터넷 카드를 보내는 정도가 고작이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회사원 이동욱씨는 “특히 밸런타인데이 때 선생님께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학생들이 많아 이날이 스승의 날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미국인 에이미 그랜트(24·대학원생)도 “선생님들도 생소한 스승의 날보다 생일, 결혼기념일 등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날을 더 기억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