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세상]남자 전업주부

  • 입력 2001년 5월 16일 19시 06분


현재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K씨(28). 아내가 회사 야유회를 떠난 토요일을 틈타 고등학교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번개 동창회’를 가졌다.

평소 바쁜 아내 대신 요리와 설거지 등 집안 일을 도맡아 해온 터여서 이날도 능숙한 솜씨로 친구들에게 대접할 요리를 장만했다. 요리를 맛본 친구들의 반응은 ‘환상적이야!’.

워낙 오랜만의 만남이어서 그런지 ‘번개 동창회’는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여기저기 술병이 흩어져 있는 방안에는 게슴츠레한 눈을 한 세 남자만 남아 있었다.

모인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일요일에 출근하는 S씨(28).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출근도 못하는 것 아니야…. 할 일이 무척 많은데. 그만 먹고 일어서자.”

집에 갈 틈을 노리고 있었던 C씨도 거들었다. “그래 적당히 마시자. 오전에 회사 선배의 결혼식이 있단 말이야.”

친구들이 간다는 말에 서운했는지 K씨는 벌컥 화를 냈다.

“나는 일요일이라고 노는 줄 알아? 나 같은 전업주부는 쉬는 날도 없어. 계속 마셔!”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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