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안 곳곳에서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 사회의 각종 모순들을 들춰내고 처방 또는 비전을 제시하는 강연회와 토론회가 전례 없이 활발하다. “이것만은 바로잡자”는 성명서를 낭독하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추락한 도덕성을 회복하고 공동체 의식을 강조해야 한다는 외침 속에 느닷없이 이기주의를 들고 나온 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요리후지 가츠히로가 쓴 ‘현명한 이기주의’가 바로 그 책이다.
제목에서부터 인문학 냄새가 물씬 나는 책이지만 사실 이 책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이론들은 철저하게 생물학적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감명 받은 이라면 그 다음 단계로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개념에서 죄수의 딜레마 등 게임이론은 물론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에 이르기까지 행동생태학 이론으로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규범의 실체를 분석한다.
저자는 본래 악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동기의 이기성’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의 ‘타자 침해성’인데, 이 두 요소가 합쳐질 때 우린 그것을 이기주의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기주의는 남의 이기주의를 크게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가 아니던가. 민주주의의 정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모두가 테레사 수녀처럼 살면 인류는 절멸하고 만다. 모두가 번식을 포기하고 남을 위해 일생을 바친다면 그게 바로 모두가 함께 죽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생명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모두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시집도 가지 않고 평생 여왕벌을 위해 헌신하는 일벌들의 이타주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여왕벌과 일벌의 몸 속에 있는 유전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진화한 행동임을 알고 나면, 즉 유전자의 관점에서 다시 보면 결국 이기주의일 뿐이다.
현명한 이기주의? 언뜻 듣기에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봤음직한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책의 결론 부분에서 그는 “진지하기만 한 이타주의와 어리석고 표피적인 이기주의의 양극을 ‘현명한 이기주의’로 이끄는 것이 21세기 인류의 과제”라고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일본 정부가 보이고 있는 이기주의는 그리 현명하지 않은 것 같다. 일본에서는 이 책이 얼마나 읽히고 있는지 궁금하다.
요리후지 가츠히로 지음 노재현 옮김 302쪽 9700원 참솔
(서울대 교수·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