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는 학문의 소산입니다. 학문이란 기나긴 삶의 역정을 통하여 묻고 배우면서 얻어지는 축적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내면의 온축된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강의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수강자의 내면의 생각과의 교감의 장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최소한 타인에게 전달치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어떤 애절한 충동이 계속 나의 내면으로부터 끓어오를 때만이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강의가 비록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하더라도 바로 그 공감의 장 속에서 권위화되어가고, 권력화되어가고, 찬반의 희롱물이 되어가고, 시세의 상품이 되어가며, 반복의 나락속으로 떨어져 가고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 도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을 위하여 우리 모두가 한번 깊게 숙고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강의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전달할 길이 없다고 생각되었던 조직적이고도 고등한 학문의 체계를 아주 비근한 삶의 체험을 통하여 재미있고 쉽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은 핫미디어와 쿨미디어라고 하는 이분법적 통념을 본질적으로 분쇄하는 작업이었으며 이것은 텔레비전이라는 정보매체가 이 지구문명사에 등장한 이래 도무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선구적 혁명이었습니다. 이 혁명은 기존의 정보의 내용과 전달방식에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으며, 그 충격은 엄청난 반동과 반발로 우리 사회에 등장했습니다.
나는 나의 지식의 한계나 신체적 능력의 한계를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식은 무한하며, 또 그 지식의 재미도 무한하며, 또 그 재미의 공감방식도 무한합니다. 나는 그러한 무한성과 다양성을 공자의 ‘인(仁)’, 그리고 공자의 ‘째즈’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나의 강의 방식이나 그 분위기는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나에게 주어지는 하등의 압박감이나 부자연스러움이 부재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국민 여러분께서 매주 이어지는 저의 강의속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고 계시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저를 못견디게 만들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저 자신이 제 강의로 인하여 권력화되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권력구조속에서 도올 김용옥이라는 인간이 소외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문은 진리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권력을 거부합니다. 저 자신의 실존속에 온축되어가고 있는 권력을 부정하는 길만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라는 엄숙한 양심의 명령앞에 나는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나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최선의 지속이 곧 최선은 아니라는 진리는 너무도 명백합니다. 이것은 도피가 아닙니다. 이것은 정당한 단절입니다. 예로부터 한 선비가 자신이 권력화되어가고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의 도구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감지할 때는 아무 이유없이 가차없이 지위를 사양하고 낙향하거나 은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정당한 사회적 가치로서 존중되어온 우리 유학의 유구한 전통입니다.
도올의 논어이야기는 저 금남로를 핏빛으로 물들였던 비극의 함성이 메아리친 그 날, 2001년 5월18일, 제 64강으로 끝납니다. 저는 이제 저의 강의를 침묵으로서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주역’의 제 64괘는 미제(未濟·끝나지 않음)로 끝납니다. 학문의 본령은 역시 자기의 앎의 나눔보다는 자신의 앎의 축적의 선행에 있으며, 연찬하는 삶의 자세에 있습니다. 저는 이제 학자의 본무로 복귀하려 합니다.
그동안 이해와 사랑과 격려로서 저를 지켜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인류사에 유례가 없었던 파격을 감행하며 우리 사회에 어떤 진실을 전하려했던 한국방송공사의 눈물겨운 노력에 우리 국민모두가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저를 항상 겸손하게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도와준 한국의 언론제현께도 충심의 사의를 표합니다.
2001년 5월21일 아침 무정재에서
도올 김용옥 아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