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하는 학생을 지도하려니까 욕을 하며 달려들었습니다. 학생과 격투가 벌어져 제 팔이 부러졌지만 창피해서 말도 못했습니다. 여건만 되면 학교를 떠나고 싶습니다.”(서울 모중학교 교사)
‘교실 붕괴’는 수업의 파행뿐만 아니라 교권의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 통제불능의 교실, 교사를 폭행하는 학생과 학부모들, 흔들리다 못해 추락하는 교권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교사들….
스승의 날인 15일 광주의 한 고교에서 학생들이 교사를 집단폭행한 사건이 폭로됐다. 이뿐만 아니라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폭행 또는 고소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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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자 중심 교육에 교사는 '들러리' |
▽교권추락실태〓지난해 경기 S초등학교 C교사는 다른 학생의 수행평가지를 부모에게 전달한 학생을 체벌했다. 그 학생의 어머니가 달려와 학생들 앞에서 다짜고짜 C교사의 뺨을 때렸고 C교사는 충격으로 입원해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최근 수업시간 중 남학생으로부터 전치3주의 폭행을 당한 부산의 여교사는 교육청에 의해 최초로 업무상 재해로 인한 공상(公傷)판정을 받기도 했다.
한국교총의 조사결과 지난해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례는 모두 11건. 교총 관계자는 “창피해 하는 경우가 많아 드러나지 않은 사례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약간의 체벌이나 제재에도 학생들은 학교와 교육청 인터넷 게시판에 비난메일을 무더기로 올리고 있다. 두발이나 복장의 문제를 지적해도 교사에 달려든다.
서울 강남 S중 K교사(33·한문담당)는 “교사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신비중이 낮은 과목일 경우 반 전체가 교사를 ‘집단따돌림’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무엇이 문제인가〓학생들의 교권 경시는 자녀들의 사소한 불이익이나 제재에도 무조건 항의하는 부모들의 태도가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공교육 위기와 교권 추락의 원인을 제대로 된 가정교육의 부재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서울 강남의 A초등학교는 최근 급식 당번 문제로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 학부모의 배식 봉사가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 일자 학교측은 6학년 학생들이 1, 2학년 동생들의 배식을 도와주도록 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길러주자는 교육적 의도가 있었다. 그러자 학부모들이 “학원 가기도 바쁜데 애를 밥 심부름이나 시키려고 학교에 보내는 줄 아느냐”며 들고일어났다. 결국 교장은 ‘밥심부름 교육’을 포기했다.
한 학부모는 “요즘 교사들은 학부모들에게 휘둘려 아무 권한이 없다”며 “‘학교위기’의 원인을 교사에게만 돌릴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학부모는 또 “말로는 ‘인간교육’을 요구하면서도 교사가 아이를 조금만 체벌해도 고발하는 등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도시 K중학교의 교사 L씨(31)는 “자녀가 틀린 시험문제에 대해 학원의 ‘자문’을 받아 ‘무슨 근거로 그런 문제를 냈느냐’며 전화로 항의하는 학부모들이 시험 때마다 5, 6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학교를 정책 실험의 장으로 삼아 비현실적인 교육정책을 입안, 교사들의 의견을 무시한채 밀어붙이는 교육당국도 교권침해의 한 ‘주체’라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교총이 집계한 지난해 교권침해 사례는 90건. 99년의 77건에 비해 17%가 늘어난 수치로 90년대 중반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다(표참조).
한국교총 김경윤 교권옹호부장은 “피해의 양적 증가도 문제지만 학생들 앞에서 교사를 폭행하는 등 질적으로 경악할 사건이 늘고 있다”며 “전통적 사제관계를 뒤흔드는 실험적인 정책이 마구잡이로 추진되면서 최소한의 교권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