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조지프 파인 2세 외, 신현승 옮김
376쪽 1만4000원 세종서적
98년에 나온 할리우드 영화 ‘베리 베드 씽(Very Bad Things)’은 결혼식을 소재로 했다. 신부 로라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하객 앞에서 멋들어지게 혼례를 치르겠다고 고집한다. 그 바람에 신랑과 친구들이 실수로 벌여놓은 엽기적 해프닝은 끝이 날 줄 모른다.
우리 나라 현실에서도 결혼을 앞둔 신부라면 미국 영화 속 로라 못지 않게 바쁘고 예식에 집착하는 이들이 많다. 웨딩 드레스를 맞추고 기념촬영 장소를 고르며 돌아치는 신부 가운데 유난한 경우를 보면, 예식을 치루려고 결혼하나 싶을 정도다.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결혼식 날 신부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경험을 하게 된다. 장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한몸을 드러내야 한다. 오직 신부에게만 허용된 웨딩 드레스인 만큼 살을 에는 추위에도 카메라 앞에서 몇 시간씩 기꺼이 미소지을 수 있다.결혼식날 신부는 잠시 자신이 옛날 궁성의 공주와도 같은 존재가 되는 환상을 체험하는 게 아닐까. 하얀 웨딩 드레스는 공주의 공식 의상이요, 신부 입장 식순은 공주 체험 의식의 절정 같은 것 아닐까.
만약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예식 비즈니스는 이제 ‘환상 체험’을 파는 사업이 된다. 종전처럼 행사장 대여료로 얼마, 웨딩 드레스 대여료로 얼마, 신부 드레스 자락 들어주는 수고비로 얼마를 받는 게 아니다. 신부가 ‘1일 공주’를 체험할 수 있도록 공연을 연출하는 비즈니스다. 대가의 크기는 그 체험 연출이 얼마나 솜씨 있었나, 신부가 얼마나 만족스러운 공주 체험을 할 수 있었나에 따라 지급돼야 마땅할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발상을 비즈니스 전략 관점에서 이론화한 일종의 마케팅 전략론을 다룬다. “미래에는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하는 데 마케팅 전략의 중점을 두고 비즈니스를 조직해야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가 주장의 골자다.
결혼식 비즈니스를 예로 들어 말한다면, 신부가 ‘공주 체험’에서 얻는 만족도를 척도 삼아 예식 서비스의 품질을 평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최대한 만족스러운 신부의 ‘공주 체험’이 가능한 방향으로 비즈니스를 재조직해야 예식 서비스 비즈니스로서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왜 미래의 기업에 그런 전략이 필요한가. 저자들 설명으로는, 최근 기업들은 성장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다. 정보와 지식의 유통 속도가 너무 빠르고 광범위해져서 제 아무리 부가가치가 높은 신개발품을 내놓아도 이내 경쟁우위를 잃고 범용품으로 전락하곤 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넘어 뭔가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줄 수 있는 특별한 마케팅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이 ‘고객이 만족하는 체험을 연출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떤 식으로 연출하면 비즈니스가 고객이 만족하는 체험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 필요한 비즈니스 조직 혁신은 어떻게 해야 좋은지 등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설명했다.
마지막 장 ‘트랜스포메이션 경제(transformation economy)’ 부분에서는 고객이 자신의 긍정적 변화를 체험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사업을 실험적으로 논했는데, 비즈니스 조직의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도 겸해 흥미롭다. 마케팅 전략 관련 학자, 실무자 뿐 아니라 사회과학도나 일반인도 비즈니스 트랜드를 읽는데 적지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원제 ‘The Experience Economy(1997년)’.
곽해선(SIM컨설팅 경제교육연구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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