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가상' 선정 한수산-박영한 등 발굴
우리 문학과 지성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세계의 문학’이 6월1일 발간되는 2001년 가을호로 통권100호를 맞는다.
연배로 따지자면 ‘창작과 비평’(1966년 창간)이나 ‘문학과 지성’(1970년 창간)의 후배뻘이지만 100호의 의미는 각별하다. 1976년 가을 창간호를 낸 이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4반세기 동안 자력으로 발간해왔기 때문이다.
‘세계의 문학’을 이처럼 거목으로 키운 1등 공신은 민음사 박맹호 사장이다. 군사정권 시절 ‘한국 문학의 세계화, 세계 문학의 한국화’를 이상으로 계간지를 만든다는 것은 회색분자란 의심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박 사장은 삼고초려 끝에 서울대 후배인 김우창(고려대) 유종호 교수(연세대)를 초대 편집위원으로 영입, ‘창작과 비평’의 참여문학과 ‘문학과 지성’의 순수문학을 포괄하는 중간노선을 견지해왔다.
‘세계의 문학’이 한국문학사에 기여한 공로는 ‘오늘의 작가상’이 거둔 성과와 맥을 같이 한다. 당시에는 작품 전문을 잡지에 싣는 것도 파격적이었고, 상금 대신 인세를 지급하는 방식 역시 신선했다.
첫 회의 한수산(부초)을 비롯해 2회 박영한(머나먼 쏭바강), 3회 이문열(사람의 아들) 등이 ‘오늘의 작가상’ 수상으로 문단에서 입지를 굳혔고 이들의 당선작이 실린 ‘세계의 문학’은 각각 30만부가 넘게 팔렸다.
‘세계의 문학’은 제호에 걸맞게 국내에서 푸대접을 받아온 해외문학을 소개하는 통로역할도 했다. 보르헤스 마르케스 등 남미문학 외에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이다. 1987년 당시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소개해 큰 성공을 거뒀다.
문학 외에 유능한 학자들의 노작을 과감하게 전재하면서 지성계를 리드해온 점도 ‘세계의 문학’의 성과 중 하나다. 1980년대 초반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귀국, 까까머리에 두루마기를 입고 아무에게나 반말투로 말하던 도올 김용옥 교수를 한국 지성계에 데뷔시켰다. 이 잡지는 또 ‘후기 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되기 10여년전인 198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소개하는 혜안을 보여줬다.
‘세계의 문학’은 다른 계간지와 마찬가지로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박 사장은 “아무리 적자를 보더라도 계속 잡지를 발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의 문학’은 100호 기획으로 외국 작가의 근작을 엄선해 번역 소개한다. 이 가운데는 루이스 얼드리치(미국) 지넷 윈터슨(영국)를 비롯해 밀렌코 예르고비치(크로아티아) 알베르토 푸겟(칠레) 레오나르도 파두라(페루), 자비네 숄(오스트리아) 등 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포함됐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