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록전집’에 실리는 연행록 관련자료들은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문화 교류 내역을 보여주는 방대한 자료들이다. 이에 따라 이 전집은 동아시아 교섭사 및 문화사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행록전집’ 발간의 가장 큰 학술적 의의는 존재조차 몰랐던 연행록들을 발굴해 한 곳에 모았다는 점이다. 전집에 실리는 연행록들은 한글로 된 것과 한문으로 된 것이 섞여있다. 앞으로 이들을 정밀 분석하면 중국에 파견됐던 사신들의 시기별 특징뿐 아니라 중국이 조선사신을 어떻게 대접했는지, 사신들이 중국 문물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中천주교 초기 모습 수록
실제로 지봉 이수광(1563∼1628)은 세 차례의 중국 사행(使行)을 통해 중국에서 여러 나라 사신들과 교제하면서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였는데 이번에 그가 쓴 ‘안남사신창화문답록(安南使臣唱和問答錄·1597년작)’의 발견으로 안남(安南·베트남)사신과의 교제 내역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당시 안남에서 이수광의 한문 저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재로 사용됐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그 전래 경로에 관해 의견이 분분했다. 일본을 통해 전해졌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시 됐으나 이번에 ‘안남…’ 발견으로 이수광이 중국에서 만난 안남 사신에게 자신의 저서를 직접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지금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연행록에는 천주교가 중국에 정착 단계에 들어선 상황이 묘사돼 있을 뿐이었으나 1721년 유척기(1691∼1767)가 지은 ‘연행록’이 발견됨에 따라 중국의 천주교 전래 초기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영조의 왕세자 책봉을 허락받기 위해 주청사 서장관 자격으로 중국에 갔던 유척기는 처음 접한 성모 마리아상에 대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생기가 돈다”고 기술했다. 유척기는 천주교회인 천주당의 내부 장식과 외부 전경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했다.
◇'제2 박지원'등장 가능성
임 교수는 “지금까지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1737∼1805),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1731∼1783) 등 몇몇 학자가 지은 소수의 연행록만이 학계에서 주목을 받아 왔지만 이번 전집 출간을 계기로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면 제 2, 제 3의 박지원이 새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 교수가 연행록 연구를 시작한 것은 지난 1975년. 한국의 고전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문화의 영향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연행록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각종 문헌에 나타난 연행 기록을 조사한 뒤 당시 사절단에 포함돼 있었던 인물의 문집을 샅샅이 뒤지는 등 26년간 각종 문집과 단행본, 개인소장본에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임 교수는 “이런 연구는 ‘미련한’ 구석이 있어야 해낼 수 있다”면서 자료 수집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일부 대학에서는 도서관에 보관된 고문서들이 귀중본이라는 이유로 대출과 복사는 고사하고 자료를 보여주는 것 조차 꺼렸다. 복사를 허락한 대학도 그 댓가로 ‘연행록전집’이 출간되면 100권 한 질을 기증하라고 요구했다.”
임 교수는 그동안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150여종의 자료들을 처음 발굴했지만 연행록에 대한 단편적 사실 보다 연행록의 전모를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때그때 학계와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임 교수는 그동안 연행록 관련 자료 수집에 치중하느라 내용 분석 및 연구에는 본격적으로 손을 대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연행록전집’ 발간을 위해 들인 임 교수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