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의 속성은 현실을 과장하고 왜곡하고, 어떤 틀 속에 가둬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체중보다 10㎏는 더 나가게 보이는 것도 TV의 그런 잔인한(?) 속성 때문이다. 그래서 날씬한 여자 탤런트를 직접 보면 조막 만한 얼굴에 뼈만 앙상해 목불인견(目不忍見)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탤런트 역시 실물을 대하면 키가 엄청 작거나 빼짝 말라 건어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실망하게 된다.
하지만 차인표는 오랜만에 근육질의 몸매와 강렬한 눈빛 그리고 만만치 않은 성격을 말해주는 야무진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의 이름까지 외우지는 못했다.
그러고 얼마 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강풍호, 강풍호’하며 뒤집어지는 것을 보았다. ‘강풍호가 누구야?’ 하며 완전히 떴다는 TV드라마를 봤더니 그 곳에 내가 무척 매력적이라고 보았던 한 남성―차인표가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차인표에게 매혹됐던 것은 그가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TV에는 몇몇 사극을 빼고는 손에 잡히듯 현실감을 주는 남성이 없었다. 그러나 차인표에게는 엄청난 에너지가 잠재된 듯한 강인한 몸매와 냉정함이 깃든 눈매, 그리고 여자들이 착각할 수 있는 부드러운 미소가 함께 있어 TV에서는 보기 드문 남성적 매력을 갖고 있었다.
차인표는 강풍호로부터 거지왕초 역, 그리고 도무지 겉돌기만 하는 냉철한 재벌 2세 역, 바람둥이 날건달 등 수많은 역에 도전해왔다. 당연히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었다. 표정연기도 좋아졌고 약점인 목소리 역시 가능성을 풍기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나는 ‘TV 속의 차인표’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내가 차인표를 한 잡지 인터뷰로 직접 만나본 경험 때문이다.
그는 아주 멋진 남자였다. 두뇌가 뛰어났고, 예의도 발랐고, 자신의 생각을 사려 깊게 표현하는 태도도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탤런트로서 자신의 가치를 냉정하게 견줘볼 정도로 시장을 읽는 타고난 감각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내게 인상깊었던 것은 그가 연기한 그 어느 역할보다도 실제 만난 그가 훨씬 매력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여성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어떤 역할도 ‘차인표 이상’이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뭘까―TV가 지닌 워낙 잔인한 속성 탓일까?
‘쇼비즈니스의 세계’의 속성은 연기라는 틀을 통해 관객을 속이는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속이기에는 차인표라는 실제 인물이 지닌 장점이 너무 많다.
진정한 연기자가 되려면 차인표는 ‘성숙하고 완성도 높은 차인표’라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 ‘TV에서는 멋졌는데 진짜 만나보니 별로 예요’라는 말을 듣는 이가 진짜 연기자이듯이.
전여옥(방송인·㈜인류사회대표)satuki@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