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홈스테이-한지붕 한솥밥 … "파란눈 형이 생겼어요"

  • 입력 2001년 5월 30일 18시 30분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과 안방에서 만나 각국의 문화를 접하고 외국어도 익힐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외국인을 호텔 등이 아닌 일반 가정에 묵게 하며 한국의가정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홈스테이’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홈스테이는 자녀들에게 낯선 외국의 문화를 자연스레 익히고 외국어를 배울 기회도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자라는 아이들을 둔 가정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파란눈의 새 식구

27일 오후 구로구 오류동에서 배석호씨(45·강남성모병원 환자서비스팀장)네 아파트 거실. 배씨 부부와 아이들이 푸른 눈의 서양인을 가운데 놓고 함께 찍은 사진을 돌려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쥘, 지난 주말에 설악산 갔을 때 찍은 사진이 나왔어. 여기 상윤이랑 준호랑 함께 찍은 사진도 있네.”

“파더(father), 여기가 비룡폭포 아닌가요?”

배씨를 ‘아버지’로 부르는 푸른 눈의 새 식구는 한 달째 이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프랑스인 에드 쥘(24). 영어가 능통한 대학원생인 그는 한국 기업에서 인턴십 과정을 밟기 위해 입국해 배씨 집에 머물고 있다.

식구들이 일과 학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통한 대화의 시간이 만들어진다.

그리 넓지 않은 30평형대의 아파트에 방까지 내주면서 낯선 이방인을 불러들인 이유도 자녀에게 자연스레 외국문화와 외국어를 접할 수 있게 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호준(17)이한테 파란 눈의 형이 생긴 셈이죠.”

배씨는 “5년째 홈스테이를 하다보니 아이들도 쥘 같은 서양인을 처음 만나도 아무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됐다”며 흐뭇해했다.

외국생활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괜히 주눅부터 드는 ‘토종’ 한국인들의 고충이 이들에겐 딴 세상 이야기다.

호준이도 “형과 함께 지내면서 형의 고향인 노르망디 지방의 문화와 풍속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배씨네가 이렇게 홈스테이를 하며 ‘동거(同居)’를 경험했던 외국인은 쥘을 비롯해 일본 러시아 체코 뉴질랜드 등 10여개국 30여명. 배씨 가족이 참여하고 있는 다언어 활동모임인 ‘렉스’를 통해 이들을 소개받았기 때문에 별도의 숙박료는 받지 않고 있다.

▽함께 사는 지혜

까다로운 외국인과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하려면 불편한 게 많을 것 같지만 배씨네가 이들을 위해 별도로 준비한 것은 많지 않다.

“침대 있는 방 하나를 내주고 아침식사 때 콘푸레이크나 토스트 같은 간단한 서양식을 준비하는 것이 전부예요. 저녁식사는 한식으로 한국의 맛을 경험하게 해주고요.”

배씨의 부인 조재열씨(43)는 좁은 집에서 아이들이 방을 내주고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점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홈스테이를 하면서 얻은 것이 더 많다고 말한다.

“언어학습뿐만 아니라 외국 문화에 대한 친밀감과 포용력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세계화’ 가 돼가더라고요.”

문화 차이와 불편을 참고 풀어나가는 지혜를 생활 속에서 체득하게 되는 것도 ‘가외의 소득’.

쥘이 처음 왔을 때도 이런 과정은 마찬가지였다. 귀가 시간을 통제하려는 배씨와 자유로운 귀가를 허용해달라는 쥘의 의견이 맞서기도 하고 실내에선 신발을 신지 않는 우리 습관이 쥘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쥘을 단순한 ‘식객(食客)’이 아닌 ‘가족’으로 대하면서 대화와 양보를 통해 해결됐다.

또 하나. “사춘기가 되면서 부모들을 멀리하기 시작하는 두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 생각 밖의 큰 소득”이었다는 배씨 부부는 “남과 함께 사는 지혜를 자녀들에게 가르쳐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가정이라면 한번 꼭 권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홈스테이는…

"있는 그대로…부담 없어요"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숙박업소의 부족이 예상되면서 정부에서도 홈스테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홈스테이는 있는 그대로의 가정생활 체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자격조건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다음은 호스트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본조건이다.

▽조건〓기초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외국어 능력과 함께 독방과 간단한 서양식 아침식사 등을 제공해주면 된다. 민박 일정에 따라 하루나 이틀 정도 전통문화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수 있다.

▽주의사항〓호스트로 등록할 때 국적 연령 성별 등 게스트의 조건을 미리 정해야한다. 특히 장기 투숙자의 경우 귀가시간 생활규칙 등에 대해 사전에 합의하는 것이 좋다. 대화중 정치나 종교의 주제나 상대방 나이나 수입 등 신상에 관한 질문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자녀의 외국어공부를 위해 게스트를 맞을 경우 사후에도 편지 등을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는 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

▽알선단체〓‘렉스’나 ‘라보’처럼 ‘다언어 가족활동’을 위해 외국인과의 교류를 주선해 주는 단체에 가입해 소개받을 경우 상호교류의 원칙상 숙박료를 받지 않는다. 일반 알선업체를 통해 소개받을 경우 1박에 30달러 안팎의 숙식료를 받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호스트와 게스트를 연결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도 늘어나고 있다. 2002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서울시 등 지자체들도 외국인 홈스테이를 적극 권장, 알선해 주고 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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