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비경]강원 태백 삼수령/3개江 적시는 '생명의 원류'

  • 입력 2001년 5월 30일 18시 39분


계곡에 걸쳐있는 미인폭포
계곡에 걸쳐있는 미인폭포
두 달째 계속되는 봄가뭄. 차를 달려 강원 태백시로 가던 길에 정선 소금강의 동대천변을 지났다. 가뭄으로 계곡물도 말라 개천은 온통 허연 돌무더기 일색이었다. 그래도 용한 것은 논둑에 찰랑거릴 만큼 물을 댄 논에서 이앙기로 모를 심던 농민의 바쁜 일손, 그리고 팍팍하게 말라만 가는 대지를 신록의 푸르름으로 뒤덮어 농민에게 쉴 그늘을 만들어 준 이 땅의 산천의 초목들. 아침 저녁 무심코 낭비한 물을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온다.

가뭄으로 물의 중요함을 새삼 느끼며 강의 원류를 찾아 떠난 생태여행. 그 목적지는 태백시의 ‘삼수령(三水領)’ 피재(해발 920m)와 그 주변의 검룡소(儉龍沼)와 미인폭포였다.

차가운 샘물이 하루 5000t씩 흘러 내리는 금대봉 아래 안창죽 계곡 검룡소의 바위홈 물길.

삼수(三水)란 한반도 남부를 적시는 세 강. 서해로 흘러드는 한강, 남해로 가는 낙동강, 그리고 동해로 유입되는 오십천을 말한다. 그런데 이 세 강의 원류가 신기하게도 모두 태백 근방에서 발원한다. 삼수의 원천이 깃든 곳은 어딘가. 두 개의 산줄기가, 더 정확히 말하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Y’자 형태로 만나 생긴 계곡이다. 삼수령 피재는 바로 이 세 계곡의 중심, 두 산줄기의 교차점이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피재에 떨어진 빗방울은 세 개로 쪼개져 각기 다른 계곡으로 흘러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 물은 계곡 어디선가 솟거나 내를 이루어 강줄기의 원류가 되는데 그것이 금대봉 산기슭의 검룡소(한강), 태백의 황지(낙동강), 그리고 낙동정맥의 태백 인근 산간에서 시냇물이 추락하는 통리의 미인폭포(오십천)다. 서로 자동차로 15분 이내 거리에 있다.

피재는 삼척 태백 두 시를 잇는 35번국도상의 고개. 마루턱에 ‘삼수령 피재’라고 쓰인 안내판과 삼수령 돌탑이 있어 찾기 쉽다. 조그만 주차장과 상점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삼수의 원류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검룡소로 방향을 잡았다. 안창죽 마을을 지나 숲안에 들어서니 멋진 숲길이 펼쳐진다. 700m쯤 가니 징검다리가 나온다. 한강 최상류의 돌다리라고나 할지.

징검다리 건너 검룡소까지 600m는 쭉쭉 뻗은 ‘롱다리’ 이깔나무(낙엽송)가 하늘을 가린 호젓한 숲터널 오솔길이다. 따가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인데도 냉방기를 켜둔 것처럼 시원하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이 짙은 숲그늘, 졸졸 소리내며 바위틈을 흐르는 차디 찬 시냇물 덕분 아닐까. 천혜의 ‘냉방계곡’에서 가장 호사를 누리는 것은 들꽃인 듯 하다. 길가 풀숲를 하얗고 노랗고 연보라빛으로 수놓은 여리디 여린 들꽃. 아무렇게 찍어도 작품이 나올 멋진 곳이다.

이깔나무 숲길이 끝날 즈음 아담한 ‘검룡정’이 나타나고 거기서 왼쪽으로 경사진 암반으로 오르면 검룡소다. 불과 20여m. 물길을 찾아 보니 바위의 홈 안에 있다. 연못을 탈출한 물은 연녹색 이끼로 덮인 바위의 홈(폭 50㎝, 깊이 60㎝ 내외)을 타고 높이가 2m에 무려 12단이나 계단을 이룬 돌홈을 따라 폭포처럼 흐르고 있었다. 멋진 수석(壽石)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대단하네요. 이 물로 바위에 홈이 패이다니…. 얼마나 걸렸을까요.” 동행한 이종승씨(승우여행사 대표)의 질문. 잠시 가늠 해 본다. ‘만년, 십만년, 아니면 더….’

물길을 따라 바위 위에 올라서니 원천이 보였다. 계곡 막장에 놓인 ‘깊은 산속 옹달샘’(둘레 20m) 격이었다. 숲그늘 짙은 아담한 계곡 안 작은 공간, 연못안 바위틈의 작은 구멍에서 솟는 이 샘물이 장장 514.4㎞를 흘러 마침내 강화만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한강의 첫 물이었다. 손을 담가 보았다. 20초도 채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웠다. 두 손 모아 만든 손바가지로 한 웅큼 샘물을 떠 목을 축였다. “한강 물을 통채로 들이키는 기분이네요.” 이씨의 말 그대로였다. 샘물은 신비로왔다. 물맛도 그러려니와 수온과 용출수량이 변함없이 항상 똑같다는 것도 그랬다.

검룡소를 나와 태백시내를 거쳐 통리의 ‘미인폭포’로 발길을 옮겼다. 오십천은 원류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데다 추정되는 곳에 접근마저 쉽지 않아 미인폭포를 ‘원류의 상징’ 쯤으로 삼는다. 38번국도의 태백 삼척 두 시 경계를 지나 삼척쪽으로 1.7㎞ 가량 가자 왼편에 미인폭포 안내판이 보였다. 주차장에서 폭포까지는 500m 가량. 계곡 아래로 향한 숲길의 중턱쯤에서 빼꼼히 열린 숲 사이로 계곡안 속살이 들여다보인다. 붉은 바위 절벽과 함께 오른편으로 신부의 하얀 드레스 조각이 천길 바위절벽에 살포시 걸려 하늘거리는 듯한 모습. 과연 미인이로다.

용소(폭포수가 담긴 연못) 주변은 온통 바위 투성이다. 그 사이 사이의 하얀 들꽃들. 5월 한낮의 계곡 안은 자연 그대로의 소리만 들린다. 여기에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절벽을 타고 굴러 떨어지는 물소리, 초롱초롱한 산새 울음소리…. 계곡과 폭포가 연주하는 ‘미인폭포 앙상블’은 그리도 멋졌다.

▽생태여행〓승우여행사(02-720-8311)는 검룡소와 미인폭포를 트레킹하는 생태여행(무박2일) 상품을 판매중. 주말(6월 2, 9일·5만3000원)과 공휴일(6일·4만8000원) 출발. 새벽 검룡소 트레킹 후 ‘너와집’에서 식사. 6일 출발편은 정선장에도 들른다. www.seungwootour.co.kr

▼130년된 '너와집' 시내에 복원▼

태백에 가면 ‘강씨 고집’의 진수를 ‘눈과 입으로’ 맛볼 수 있다.

전통음식점 ‘너와집’. 주인 강순구씨(39)는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면 영락없는30대 초반의 포크가수처럼 보일 도시풍의 스타일 좋은 남자. 그런 그가 근처 백산의 큰번지골에 갇히는 바람에 버려진 130년된 너와집을구해시내(상장동)에 복원하고 여기서 화전민의 주식인 토속 산골음식과 소박한 한정식을 내고 있다. 산골의 맛과 멋을 살리려는 고집이 배어 있는 듯하다.

“일본에 있을 때 쇼군(將軍)의 전통가옥을 복원하는 것을 보며 생각했지요. 고향에서도 너와집을 보기 어려워 졌다는 것을 말이지요.” 94년 귀국후 강씨는 어렵사리 이 집을 구해 해체한 뒤 이 곳에 옮겨와 조립했다. 공사는 문화재전문 대목수인 김운학씨가 맡았다고.

“임금의 관을 만들 때 쓰기 위해 철저히 보호했던 황장목(토종 소나무)으로만 지은 집이에요. 못을 쓰지 않고 정교한 이음새(지네장)로만 지은 것을 보고 대목수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요.”

‘너와’는 ‘소나무로 만든 기와’. 결을 살려 도끼로 패어 쪼갠 판자다. 대들보가 우람한 너와집 실내에는 추위와 맹수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집안에 들인 외양간, 과학적인 구조로 자연통풍을 실현시킨 ‘까치 구멍’, 난방효율을 높이기 위한 이중 천정인 ‘고물 반자’, 실내 조명등 역할을 한 ‘코클’ 등이 그대로 있다.

음식을 보자. 수수전과 메밀전병, 감자옹심이(갈아낸 감자로 빚은 새알로 쑨 수제비), 옥수수범벅(옥수수알갱이를 넣고 죽처럼 지은 밥), 산초장아찌…. 불을 놓아 이룬 비탈밭에서 어렵사리 수확한 곡식으로만 지은 화전민 토속음식이 그대로 재현됐다. 좁쌀 크기의 산초(山椒)를 가지째 진장에 담근 산초장아찌의 새콤 화끈 향긋한 맛은 5월 태백의 푸른 하늘처럼 싱그럽다. 토속음식을 포함, 모두 28가지 반찬이 한 상에 오르는 ‘너와정식’(1인분 1만3000원)도 깔끔 산뜻 정갈한 차림새와 깊은 손맛으로 입을 즐겁게 한다.

▽찾기〓31번국도(봉화→태백)/소방서앞 삼거리에서 좌회전(강원관광대학 방향)/철길 건너자마자 좌회전/100m. 033-553-9922, 4669

<태백〓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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