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중세 일본에서는 부하의 아내를 요구하는 무사들이 많았다.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없다지만, 히데요시는 그런 ‘아내 요구’를 가장 많이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요구를 받은 영주들의 일부는 아내의 얼굴에 일부러 상처를 내어 보냄으로써 내심 보복을 하기도 했고, 또 일부는 다른 여자를 보내 화를 면하기도 했다. 이런 문화적 현상은 보통 ‘여성을 통한 관계 맺음’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무사와 신하가 한 여자를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신뢰감을 쌓고 또 충성도를 확인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오늘날에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히데요시는 비밀 저택에서 난잡한 성관계를 맺기도 했는데, 그 저택엔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 없었다고 하니 그 안에서 일어난 기기묘묘한 성관계의 행태를 어찌 알 수 있으랴. 히데요시에겐 첩만 16명이었다고 하니 가히 그 정도를 짐작만 할 뿐이다.
어쨌든 이렇게 난봉꾼인 히데요시였지만 집에만 들어가면 순한 고양이가 되고 말았다. 자신의 부인 앞에서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전쟁터에 있지 않을 때는 성관계 역시 자신의 아내하고만 했다고 한다. 내심이야 어찌 되었든 한국 남성들이 배울 부분도 없지는 않다. 물론 그의 난잡한 성생활을 배우라는 건 아니다. 집에서 마치 자신의 아내에게 온순한 고양이처럼 행동하고, 지극히 사랑하는 것, 그런 마음을 배우라는 의미다.
천하를 얻고 세상을 호령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가정, 자신의 아내를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예로부터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 했다. 가정을 제대로 못 다스리면서 세상을 경영하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큰 것은 언제나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이루어지는 법이다.
< 정규덕/부산 호텔롯데 이지웰비뇨기과 원장 www.DrJu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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