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세대 의대 신의진교수 '느림보 학습법'

  • 입력 2001년 6월 6일 18시 43분


“바로 아래 1305호에 사는 집은 딸(5)이 3세 때 한글을 떼고 지금은 간단한 영어회화를 할 수 있대요.”

“한글을 읽고 영어를 잘 한다고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잖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사는 회사원 이모씨(34)는 요즘 아내와 큰아들(5) 교육 문제를 놓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최소한 12년간은 공부에 시달릴 텐데 어릴 때만큼은 맘껏 뛰어놀게 해주자는 것이 이씨의 지론. 아내는 “두 살 때 유치원 과정을 가르치고, 초등학교 1학년 때는 2학년 과정을,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중학교 과정을 미리 가르치는 것이 추세”라며 맞선다. 아내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이씨도 내심 ‘남들이 다 시키는데 우리 아이만 낙오자가 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든다.

아이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학부모들을 위해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최근 ‘느림보 학습법’이란 책을 냈다.

신 교수는 지난해 조기교육 비판서인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를 내 화제를 모은 인물. 신 교수는 집중력 장애 등으로 학습에 어려움이 많은 큰아이와 또래보다 최소한 1년 이상 빠른 발달을 보이는 둘째를 키우면서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결론을 이 책에 담았다.

신 교수는 “조기교육 열풍이 불고 있지만 아이의 뇌 발달 단계를 뛰어넘는 학습은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이 생기는 등 심각한 부작용으로 아이를 망칠 수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해도 야단치지 말아야〓엄마들은 아이가 거짓말을 하면 마구 혼을 낸다. 하지만 거짓말이 습관처럼 굳어진 경우가 아니면 거짓말은 아이들에게 있어 지금 하고 있는 학습이 감당하기 벅차고 힘들다는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거짓말 자체를 탓하기 전에 근본적인 동기를 찾아 그것부터 해결해 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숙제 대신해 주기〓숙제는 아이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본 학습이므로 아이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너무 벅차거나 아이 학습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터무니없는 숙제의 경우 아이 몫은 조금 남겨두고 때론 부모들이 나서서 해줄 필요가 있다. 지루하고 힘들기만 한 숙제 때문에 공부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되는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우는 학습은 ‘No’〓학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적 사고력을 통해 사고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잘한다고 좀더 어려운 걸 무리하게 시키면 아이는 과정을 이해하려고 하기 전에 무조건 외워 버린다. 이는 학습에 치명적인 나쁜 습관이 될 수 있다. 묻는 말에 아이가 바로 답을 말하기보다 스스로 ‘왜?’란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현명한 부모다. 가설을 세우고, 결과를 확인하며, 틀렸을 땐 왜 틀렸는지, 맞았을 땐 왜 맞았는지에 대해 아이 스스로 알게 해야 한다.

▽실수를 통해 배운다〓실수는 꼭 바로잡아야만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실수가 반복될 때는 야단쳐서 아이에게 부정적 자아상을 심어주기보단 ‘피드백 효과’를 이용한다. 즉 실수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직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다음 실수를 줄이는 것이다. 이런 피드백 효과는 어른보다 아이에게 더 크게 나타난다.

▽교과서를 현실로〓만 6세 미만의 아이는 실제로 보고 듣고 만지지 않고 얻은 정보를 뇌에 축적하지 않는다. 체험학습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초등학교 과정에서 겪는 체험학습의 효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주입식 교육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부모가 생활 속의 공부를 시켜줄 수밖에 없다. 아이의 교과서를 훑어보고 아이에게 어떤 내용을 어디에서 경험시킬지 고민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느림보 학습법은

◇뇌 발달 단계 따라 공부시켜야 효과

한마디로 개개인의 뇌 발달 단계에 맞는 학습법이다. 아이들의 뇌는 사춘기까지 계속 발발하며 뇌 발달의 속도나 그에 따른 능력이 아이마다 다르다. 아이의 발달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부모가 느림보 학습법의 실천에 중요한 몫을 담당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뇌는 사춘기까지 계속 발전하므로 조급함을 버리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아이의 흥미도와 학습 능력을 고려해 아이가 좋아하는 걸 시키되 싫어하는 것에 대해선 정확한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일시적인 변덕인지,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파악해 어려움이 있다면 그 원인을 찾아 없애줘야 한다. 어려움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모를 때는 일단 학습을 멈춘다.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켜서는 제대로 된 학습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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