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비경]태안 사구해안-만대포구

  • 입력 2001년 6월 6일 18시 49분


고운 모래가 해변에 쌓여 형성된신비한 모래언덕 사구
고운 모래가 해변에 쌓여 형성된
신비한 모래언덕 사구
《태안반도 북단. 바늘처럼 뾰족한 지형의 땅끝 포구마을 만대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여기에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구(사구)해안이 펼쳐져 있는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마을은 진홍빛의 해당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절경의 운치를 더한다. 친근한데 반해 잘 알려지지 않은 충남 태안군 갯마을 풍경과 사구해안의 비경을 소개한다.》

◇ 신두리 사구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바람. 그래도 느낄 수 있는 바람. 신두리의 그 넓은 해안과 언덕을 뒤덮은 먼지보다 더 고운 금빛 모래 실어온 바람은 태안 갯가의 명물이다. 태안반도 서편 신두리 해변과의 첫 대면. 그 만남은 가히 ‘충돌’적이다. 놀람도 그 도가 지나치면 말을 잊는다고 했던가. 모두들 조용히 쳐다만 본다. ‘ㄷ’자 형태로 펼쳐진 장장 5㎞의 드넓은 모래해변에 넋을 잃은 듯했다.

신두리 해변의 매력은 예서 그치지 않는다. 진짜는 그 반대편, 바람에 실려온 고운 모래가 쌓여 형성된 사구에 있다. 등으로 바람을 받으며 해변 뒤안의 밋밋한 모래밭과 초원을 보면 그저 평범한 풀밭이다. 그러나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모래밭에 뿌리를 내리고 잘도 자라 화사한 꽃까지 피운 해당화가 군락을 이루고 그 주변에 풀이 밭을 이루고 있다.

해변 뒤안의 비포장 도로 건너로 100m 더 들어가 보니 이 땅에서 가장 거대한 사구의 중심이 발아래 놓인다.

파도 몰고, 먼지모래 이고, 쉼없이 뭍을 향해 날아온 서해의 바람이 태안땅 신두리 해안의 언덕에 부딪혀 깨지면서 만들어낸 사구. 길이 1㎞, 폭 1.2㎞(약 46만평)의 이 사구가 형성되는 데는 무려 1만50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단순한 모래언덕이 아니다. 연분홍 해당화가 만발하고 풀이 숲을 이룬다. 그런가 하면 모래썰매를 타도 그만일 것 같은 깊은 경사의 고운 모래 언덕도 있다. 풀섶에서는 개구리 뱀이 함께 살고 모래밭에서는 말똥구리가 산보한다. 발소리에 놀라 장끼 두 마리가 푸드득 날아간다. 여기도 생명의 땅이었다. 이 척박한 곳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생명의 힘. 사구여행의 감동은 예서 그치지만은 않는다.

모래언덕은 모양도 다양하다. 작은 구릉 구릉을 이루며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었다. 한 동행자가 “꼭 제주도에 있는 오름같다”고 했다. 언덕을 뒤덮은 갈대모양의 풀은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사구 뒤편의 소나무숲도 운치가 있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지형이 바뀐다는 그 언덕 위에 푸른 하늘은 말없이 구름을 펼치고 센 바람속에서 모래는 날리고 있었다. 원북면사무소 041-672-5001

<태안〓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 만대 포구

조선시대 한 스님이 하산해 태안땅에 발을 들였다. 인가가 없는 곳을 찾아 한참을 걷는데 멀리 파란 물이 넘실대는 것이었다. 허 참, 아까는 분명히 땅이었는데…. 그래서 가다 가다 말았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태안군 이원반도의 땅끝, 만대(萬垈·이원면 내리 수억마을)다. ‘가다 가다 (그)만(둔)데’라는 말이 그대로 이름이 되어 버린 곳이다.

태안반도 북쪽에 낚시바늘처럼 길쭉이 솟아 가로림만을 사이에 두고 대산과 마주보는 곳이 있다. 바로 이원반도다. 사실 말이 반도지 1987년 버스길이 나기 전만해도 장날이면 태안까지 90리길을 걸어 오가던 오지중의 오지였다.

만대는 서해안뿐만 아니라 전국 어느 갯마을에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예스러움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석화가 다닥다닥 붙은 갯바위며 오염되지 않은 깔끔한 모래해변, 넓지 않은 뻘염전에서 소일삼아 가래질하는 촌로 모습,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에 서두름이 없는 주민과 외지인에 대해 친절한 넉넉한 인심…. 어릴 적 시골의 외갓댁에서나 보았던 그런 예스럽고 정겨운 풍경이 도처에 가득하다.

“낙지 제철 워(아)직 멀었시유. 평시같으면 쬐만한 놈은 벌씨 잡힐만 헌디 월(올)해는 가물어서 워직 보일질 않네유. 한 보름 더 기댈려 봐야 겠시유.” 만대포구 방파제에서 그물을 말리던 수억마을의 ‘낚지 챔피언’ 김종식씨(58)의 말이다. 개펄에서 사방 5m 이내 구멍이란 구멍은 한 눈에 알아보고 낙지구멍만 파내 하루 100마리 이상을 거뜬히 잡는다는 ‘낙지 천적’ 김씨. 그가 입맛 다시면서 칭찬하는 이 동네 음식은 ‘밀국낙지’였다.

수억마을의 북단, 땅끝을 향해 차를 몰았다. 소나무 빽빽한 작은 언덕의 돌출지형에 오르니 양편으로 모래해변이 보인다. 왼편은 큰 구매 수둥, 오른편은 작은 구매 수둥. 한여름 해수욕 즐기기에도 좋아 보이는 작고 예쁜 해변이었다. 큰 수둥의 갯바위에는 굴껍데기가 하얗게 붙어 있고 그 앞 바다에는 멋진 암초가 바다를 장식하고 있다.

태안반도 북쪽 서편의
꾸지나무골 해변

작은 산줄기를 따라 동서로 나뉜 이원반도. 서편 해안을 찾아 수억마을에서 3㎞ 남쪽인 산너머 꾸지나무골을 찾았다. 도로에서 몇 백m나 들어갔을까, 숲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숲 바깥으로 바다를 감싸듯 반달형으로 펼쳐진 모래해변. 그 해변을 향해 커다란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쉼없이 몰려 왔다.

<태안〓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생태여행〓승우여행사(02-720-8311)는 신두리의 해변과 사구를 트레킹하는 생태여행(당일) 참가자를 모집한다. 9, 10, 14, 17일 네 차례 출발. 점심식사로 밀국낙지(영풍식당) 제공. 서해대교∼해미읍성∼태안반도. 3만8000원. 9, 10일에는 해미읍성에서 열리는 역사체험축제장도 들른다. www.seungwootour.co.kr

◇ 원풍식당 별미 밀국낙지-박속낙지 입에 '착착'

신두리에 가서 낙지맛을 안보면 평생 후회할 일이다. 드넓은 개펄에서 6월중순부터 잡히는 세발낙지로 내는 ‘밀국낙지(사진)’ 혹은 ‘박속낙지’는 부드러운 낙지와 깔끔한 국물맛이 별미인 토속음식이다.

20년째 한 곳에서 밀국낙지를 내고 있는 목예균씨(54)의 ‘원풍식당’(원북면 반계리·041-672-5057)에 들렀다. 낙지를 주문하자 “몇 마리?”라고 묻는다. 세발낙지의 경우 세 마리(마리당 1500원 내외인데 요즘은 제철이 아니어서 4000원짜리 큰 낙지만 있다), 큰 낙지는 두 마리가 적당하단다. 조리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끓는 물에 낙지를 살짝 데친 뒤 가위로 잘라 조선간장에 찍어 먹고 그 국물에 국수나 수제비를 삶는 것. 그러나 그 시원한 국물맛의 비결은 따로 있다. 낙지를 데치는 물에 ‘박 속’을 넣어 잡냄새를 없애는 것이다. ‘밀국’이란 이름은 이 국물에 칼국수나 수제비를 끓인다 해서 붙여진 것. 목씨는 “밀가루도 없던 옛날에 마을에서는 밀을 갈아 이렇게 낙지국에 말아 먹었다”면서 “밀이 수확되는 6월부터 낙지도 잡히기 시작하기 때문에 밀국낙지가 태어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난히 가문 올해는 낙지가 덜 잡혀 조금은 걱정이란다. 이맘 때면 1년생인 새 낙지가 한참 잡힐 철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 원풍식당은 원북면 반계삼거리에서 만대 방향으로 조금 가다 보면 왼쪽에 있다.

<태안〓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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