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더위가 슬슬 부담스러워지더니 이제는 아침 바람도 후텁지근하다.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나보다. 올해는 휴가를 어디로 갈까? 시골 할아버지 댁에 다녀올까? 아빠를 졸라 일주일쯤 해수욕장에 갔다 올까? 어디를 가든, 이 책을 챙겨 서늘한 바람이 부는 저녁때 읽어보면 피서 기분이 조금 색다를 것이다.
책의 무대는 머릿속에 머나먼 북방의 땅으로만 그려지는 러시아. 주인공인 작가는 여름이 시작되어서부터 첫 눈이 올때까지의 긴 시간을 시골에서 보낸다. 낚시를 하고, 숲속에서 밤을 지새우고, 농가의 닭이며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는 한적한 생활이 여덟 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 실려 있다.
한적한 전원의 삶속에서 동물들은 사람보다 더 친숙한 이웃. 고무보트를 물어뜯어 벌을 받다가 숲 속의 야영지까지 찾아와 꼬리를 내리고 용서를 비는 강아지 무르직, 동물원으로 수송되던 중 탈출해 숲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펠리컨, 도둑고양이 생활을 하다 잡혀 닭들의 행패를 막는 ‘경찰’로 특별 채용된 붉은 고양이 등이 특유의 잔잔한 문체 속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흥미로운 일화를 따라가다 보면 이 세계와 대자연이 사람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 여러 생물들이 경쟁도 하고 우정도 나누며 함께 살아가야 할 곳이라는 것을 절로 느끼게 된다.
“한적하고 푸른 숲 위로 밤이 소리 없이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갓 나온 별들은 은빛 물방울처럼 반짝거렸다. 호수는 무성한 풀숲으로 둘러싸여 동그랗게 반짝이고 있었다. 검은 물결을 따라 넓은 동심원들이 생겼다 사라지곤 했다. 물고기들이 저녁놀을 구경하며 뛰놀고 있는 것이리라….”
책 뒷장에는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라고 적혀 있지만, 한때 ‘레닌 문학상’ 수상자 후보로까지 올랐던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은 책을 잡은 어른들의 손길마저 놓지 못하게 한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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