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투 쓰리 포….”
박자에 맞춰 엉거주춤한 자세로 무대에 들어선 무용수 10여명이 들고 있던 찰흙덩이를 아래에 있는 작은 판 위에 차례로 뚝 뚝 떨어뜨린다. 영락없이 ‘응가’하는 모습이다. 앞 무용수를 지켜보면서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아내던 누군가가 ‘으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심각한 표정의 안무가 홍승엽(40)도 ‘웃음의 전염병’을 이겨내지 못했다.
8일 서울 능동의 ‘댄스 시어터 온’ 연습실은 홍승엽과 무용수들이 뿜어내는 땀과 열정, 웃음으로 가득했다. 이들은 15, 16일로 예정된 ‘빨간 부처’ 공연을 앞두고 하루 7,8시간씩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빨간 부처’는 공연시간이 1시간 남짓 되는 대형 작품. 연습 도중 무용수들이 떨어뜨린 진흙 ‘똥’들은 연습이 계속되면서 어느새 가지각색 모양의 부처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홍승엽은 “사람의 편견에 따라 사물이 엄청나게 다르게 보인다”면서 “과연 내 엉덩이 밑에 있는 게 똥일까, 부처일까 하는 그런 얘기를 춤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무용계에서 그의 별명은 ‘독립군’. 그는 인맥과 학맥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예술계에서 어디에도 끈이 닿지 않는 존재로 그야말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20년전인 81년. 그는 경희대 섬유공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공학도였다.
“그전까지 한번도 제대로 된 무용 수업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음악에 몸을 싣고 미친 것처럼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사내 놈이 춤을 추겠다’며 안정된 직장을 보장하는 전공을 내팽개치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그래도 막무가내였다.
공대에 적만 두고 2년간 현대무용을 배운 그는 84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다.
무용계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예측불허의 ‘게릴라’를 닮은 그의 행보는 계속됐다. 92년 29세의 한참 늦은 나이에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했고 93년에는 아예 프로무용단 ‘댄스 시어터 온’을 창단했다.
“지금 생각해도 무용단 창단은 계란으로 바위를 때리는 무모한 짓이었습니다(한참 웃음). 창단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속옷 광고도 찍었죠. 8년간 단원들과 함께 레슨도 하면서 정말 처절하게 버텨 왔습니다.”
그는 지난해 9월 비장한 각오를 하고 프랑스 ‘리용 댄스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여기서 안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그런데 그가 안무한 ‘데자뷔’ ‘달 짖는 개’가 현지에서 5회 연속 매진을 기록하면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여줬다. 2002∼2003년 시즌에 리옹의 춤 전용극장인 ‘메종 드 라당스’의 무대에 초청됐다.
“불행하게도 국내에는 아직 현대 무용을 위한 춤 시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려면 기를 쓰고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것도 ‘한국적’이라는 두루뭉실한 평가가 아니라 ‘홍승엽 브랜드’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빨간부처’의 공연개막은 15일 오후 8시, 16일 오후 6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1만5000∼2만5000원. 02-2005-0114
스무평 남짓한 ‘댄스 시어터 온’ 사무실 한쪽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설거지 당번, 총정리할 것. …. 금요일, 남자는 쓰레기 치우는 날. 제대로 안하면 쥐기뿐다.’
리용을 놀라게 한 무용단의 공간치고는 예상 밖으로 좁고 생활 공간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14명의 무용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경까지 이곳에서 춤을 춘다.
한 무용수는 “춤추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연습이 끝나면 생계를 위해 호프집으로, 카페로 아르바이트를 위해 뿔뿔이 흩어진다. 홍승엽은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픈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대구직할시의 지원을 받는 대구시립무용단(단장 안은미)을 빼면 고정적인 월급을 주는 현대무용단은 없다. 교수들이 책임자로 있는 ‘교수 무용단’이 있지만 개런티가 지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댄스 시어터 온’의 회식 풍경은 유명하다. 공연이 끝나면 함께 식사하면서 어김없이 개런티가 든 봉투를 전달하는 것. 최근 이 무용단을 지원하는 후원회 ‘무지개 우산’이 결성됐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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