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울때 오페라는 나의 위안"
“힘들고 괴로운 일이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연습실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면 눈이 번쩍 떠지고 온몸에 힘이 솟아오릅니다. 저에게 오페라는 어쩌면 마약같은 것일지도 몰라요.”
작고한 김자경과 더불어 한국 오페라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봉임(65) 서울오페라단 단장. 한동안 좌절했던 그가 베르디의 대표작 ‘라 트라비아타’로 재기 무대를 갖는다. 17일 오후 3시반 7시반, 18∼21일 오후 7시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장년의 오페라팬들에게 그의 이름이 갖는 울림은 적지 않다. 1975년 서울오페라단을 창단, 국립오페라단, 김자경오페라단과 함께 ‘삼두 마차’를 형성하며 ‘나비부인’ ‘라보엠’ ‘아이다’ 등 숱한 대작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많은 오페라단이 생겨난 80년대에도 미국 시카고, 워싱턴, 뉴욕 등지에서 ‘대춘향전’을 공연하는 등 명성을 구가했다.
그러나 1995년 공연한 베르디 ‘돈 카를로’가 큰 적자를 내면서 그의 오페라 인생에도 위기가 닥쳤다. 장남을 가슴에 묻는 아픔을 겪는 등 액운이 겹치면서 한때 음악계에서 ‘종적을 감춘 사람’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1998년 민간오페라단 총연합회장으로 취임, 예술의전당 오페라 페스티벌 개최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다시 우울증에 빠져 미국에서 성가 지휘에 몰두하며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아픔을 극복하려면 역시 오페라에 몰두하는 일 밖에 없더군요. 땅에 쓰러지면 땅을 짚고 일어나는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올해 그는 배수진을 쳤다. 8월에는 ‘아이다’ 11월엔 ‘오텔로’를 공연하기로 하고 출연자 섭외와 대관신청까지 마쳤다. 우선 6월 ‘라 트라비아타’가 잘 돼야 차질없이 이후 계획이 이뤄진다.
“처음엔 경험은 없었지만 넉넉한 재정이 있었죠. 지금은 경험은 많은데 여건이 힘들어서…” 라고 말하는 그의 눈가가 잠시 붉어졌다.
“요즘은 고 김자경선생을 꿈에서 가끔 뵈어요. 아무 말씀은 없으시지만, 모든 것을 바쳐 용기있게 일어서라고 격려하시는 것 같아요.”
이번 ‘라 트라비아타’ 공연의 무대는 예전 어느 무대보다도 한층 화려할 듯하다. 앙드레 김이 의상디자인을 맡아 18세기 파리 습속을 재현한 화려한 의상을 선보이고, 안윤희 발레단, 전미례 예술무용단 등 실력을 인정받는 무용단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 최선용 지휘 경기도립오페라단이 반주를 맡고, 히로인 비올레타역에 곽신형 국영순 김희정 이혜경 유미자, 그의 연인 알프레도 역에 박성원 박세원 임웅균 박현준 김창환, 알프레도 부친 제르몽 역에 김성길 변병철 양재무 임성규가 출연하는 호화 캐스팅이다. 1만∼10만원. 02-338-1577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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