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한 수준별 수업〓수학과 영어 성적이 일정한 수준에 못 미치는 학생들은 재이수반을 두어 그 과정을 다시 배우도록 돼 있다. 따로 과외를 받지 않아도 학교에서 학습 결손을 책임지고 막아주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중학교 가운데 절반 가량은 교사가 부족하고(43.3%) 유급제도가 없어 학습 동기 부여가 어렵다는 이유(42.9%)로 재이수반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서울 C중학교 교사는 “재이수반 대신에 특별 보충학습을 실시하고 있지만 참여율이 낮아 학습 결손을 막는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고 털어놓았다.
재이수나 특별 보충학습 대상자 판정을 받은 학생들이 대부분 학원을 찾기 때문에 사교육비 부담도 줄어들 수 없다. 지역 교육청은 보충학습시 학생 20명 정원으로 계산해 강사료를 지급하고 있지만 대개의 경우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있어 예산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어 과학 등의 시간에 적용되는 심화 보충형 수준별 수업도 겉돌기는 마찬가지. 서울 K중학교 이모교사는 “학생 40명을 모아놓고 수준별로 수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서류상으로는 한다고 해놓고 실제로 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수업은 ‘수준별’로 해놓고 시험은 ‘획일적’으로 보는 것도 문제. ‘공통 문제와 수준별 문제를 섞어 낸다’(31.1%)거나 ‘문제의 난이도와 배점을 달리해 학생들이 선택하게 한다’(3.1%) 등 7차과정에 맞는 평가법을 도입한 중학교는 34.2%에 불과했다. 대부분(63.1%)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답했다.
7차 교육과정 연구학교로 수준별 수업을 진행해온 강원도 소양중학교는 보고서를 통해 △내신성적을 산출하려면 같은 문제로 평가할 수밖에 없어 배운 내용과 평가가 다를 수 있으며 △교실과 교사 부족으로 재이수 대상자를 줄이기 위해 문제의 난이도를 낮출 경우 성적 인플레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불안한 선택 과목제〓2003년부터 고교 2, 3학년 2년 동안 학생은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63개 과목 가운데 매주 2시간씩 최소 7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교사 수급제도로 학생들의 선택에 맞춰 수업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교사들은 “수요가 없으면 퇴출되는 것 아니냐”며 신분 불안을 느끼고 있다. 서울 구정고 이명호(李明鎬) 교사는 “‘경제 지리’ ‘법과 사회’ ‘생활과 과학’ 등 새 과목이 생기지만 통상적으로 교재는 수업시작 직전에 배포돼 자신 있게 가르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는 교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교사들은 먼저 교사증원이 이뤄져야 한다(57.8%)고 주장했다. 학교시설 개선과 확충(28.9%), 교재 및 교과서 개발(9.4%), 시간외수당 등 재정지원(3.9%)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실제 이 과정을 운용할 교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또 새 교육과정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교재만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 수업 진행 방식과 관련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하며 이에 맞는 교사 및 교실 활용법, 평가법이 나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능력별'모범 서울 성심여고▼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성심여고 2학년 난초반 교실. 50여명의 학생들은 영어시간에 각자 다른 교재를 들고 5개 교실로 나눠 흩어졌다.
이 학교는 94년부터 영어와 수학에 대해 모범적으로 수준별 수업을 하고 있다. 교재도 교사들이 직접 만들었을 정도. 이 수준별 수업은 내년부터 고교에 단계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성심여고는 영어를 5개반(파파야 오렌지 멜론 레몬 키위), 수학은 2, 3학년 이과반에 한해 3개반(A, B, C)을 운영하고 있다. 학기 초 진단평가와 상담으로 반을 편성하고 학생들이 원하면 한 단계 상위와 하위 반으로 옮길 수 있도록 했다.
반 이름을 과일에서 따오고 학생에게 선택권을 준 것은 ‘수준별 수업〓우열반’이란 오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수준별 수업을 위해 98년 교실 16개를 신축하고 영어 수학 과목 강사 2명을 채용했다. 교사들이 교재를 개발해야 하고 수업 부담도 늘었으며 수준별 수업을 할 교실도 필요했기 때문.
다른 교재로 수업을 한 학생들을 평가해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학교는 지필고사(70%)는 기초 공통 영역과 수준별 학급 교육 내용을 50 대 50 비율로 출제하고 반 별로 수행평가(30%)를 하고 있다.
2학년생 이보리양(17)은 “수준별 수업을 통해 영어 공부에 재미를 붙였지만 시험 준비 때문에 5개 반 수업 내용을 모두 공부하는 것은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김영자(金榮子)교장은 “수준별 교육이 성공하려면 교육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면서 “초기에 수준별 수업 및 평가에 대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이해를 구하느라 많은 노력을 했으며 교사들의 공감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용기자>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