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스님 현대불교 기고문]자운·성철의 죽음을 곡(哭)한다

  • 입력 2001년 6월 19일 14시 30분


해인사가 어떤 곳인가

몇몇 문중의 절 아닌

불교인의 마음의 고향

한국불교의 희망이다

해인성지에 최대불상

자운·성철 큰스님 유지라면

우리시대의 스승이란 말

천부당 만부당하다

고려대장경 모신 성지

등상불 불사가 아니고

살불살조의 수행가풍

살리는 불사에 집중

해인사에 세계 최대의 청동 석가모니 좌불상을 모신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일도 부처님 모시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는 일은 만 중생이 갈망하고 또 갈망해 마지 않는 최대의 경사이다. <불본행집경>을 위시한 모든 경전에 보면 부처님 출현을 온 세상이 찬탄하며 기리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경전상의 표현을 몇가지만 옮겨보자.

“삼라만상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만 생명이 환희용약했다. 봉사가 눈뜨고 앉은뱅이가 걸었다. 불행한 인생이 행복한 인생 되고 고통의 중생이 해탈의 부처되는 길이 열렸다.”

굳이 경전 말씀을 빌릴 것도 없이 부처님 출현은 꿈에도 그리는 우리 시대, 만 중생들의 절절한 바람이다. 절망의 사회를 희망의 사회로 대전환하는 일이요, 불행의 인생을 행복의 인생으로 바꾸는 일이다. 어찌 너울너울 춤을 추며 환희찬탄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 기이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세상에 있어선 안 되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어안이 벙벙하여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해인성지에 ‘세계 최대’ 청동부처님이 출현한다는데 여기저기에서 불상 모시는 일의 부당함에 대한 비난과 원성이 자자하다. 환희찬탄은 커녕 불만과 원망의 소리가 요란하다.

절집 밖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 정치 또는 종교적 음모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며칠 전에 있었던 스님들의 대화 한 토막을 옮겨 보는 것이 좋겠다.

“사자는 토끼 새끼를 낳지 않는다.”

온갖 험하고 거친 내용들이 없지 않았지만 핵심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영암, 자운, 성철 스님이 사자라면 당연히 그 후학들은 새끼 사자일 것이다. 진정 사자가 낳았다면 그 새끼가 사자이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당연한 상식이 철저히 무너지고 있다. 사자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토끼가 아니고선 생각도 할 수 없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들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벌어지는 일의 내용으로 볼 때 큰 사자라고 믿어왔던 자운, 성철도 본래 경망하기 그지없는 토끼에 불과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속아왔을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이런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전개되겠는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해인사에서 자운, 성철 스님의 유지를 내세우고 있는데,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자운, 성철 스님이 어떤 존재인가? 현대 한국불교에서 ‘계율’ 하면 떠올리게 되는 분이 자운 대율사이다. 돈오돈수의 깃발을 높이 들어 보조선사를 천마외도라고 질타한 분이 성철 대선사이다. 현대 한국불교의 고승이요, 우리 시대의 스승이다.

필자는 은사 스님이 따로 계시지만 마음깊이 두 분을 법의 스승으로 모시고 이 길을 걸어왔다. 그분들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고 따르는 것이 출가 수행자의 본분을 다하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이 길을 가고 있다.

회고해 보면 자운 큰스님께서는 계율을 스승 삼는 길만이 한국불교와 오늘의 수행자가 살 길이라고 고구정녕하게 타이르며 모범을 보이셨다. 성철 선사는 흙덩이를 좇는 개와 같은 바보가 되지 말고 사람을 좇는 눈푸른 납자가 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두 분 스님은 우리의 가슴에 빛나는 등불로 자리잡고 있다.

그분들이 속물주의의 상징인 최대의 불상을 모시라는 유지(遺志)를 전하셨다니 너무나 당혹스럽다. 천조각 만조각 기운 누비와 검정고무신을 전재산으로 살아가셨던 성철 선사께서 불교의 세속화를 앞당기게 하는 물신주의적 유지를 남기셨다니 참으로 비참한 심정이다.

해인사의 주장대로 그런 유지를 남긴 것이 사실이라면 자운과 성철은 처음부터 나의 스승일 수 없다. 뭇 중생들에게 상처와 절망을 안겨주는 세속화의 유지를 남겼다면 자운, 성철이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는 말은 천부당 만부당하다. 오늘부터 우리 가슴 중심에 밝혀져 있던 자운, 성철이라는 이름의 등불을 내 팽개쳐야 한다.

우리시대의 고승으로 모셨던 자운과 성철이라는 이름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려야 한다. 세상의 비판과 원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큰스님의 유지에 따른 불사라는 명분과 논리로 불사를 진행하는 자들도 흙덩이를 좇는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 한국불교에서 해인사가 어떤 곳인가?

민족의 역사속에서 해인사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현실적으로 해인사는 한국불교의 대표적 총림이다. 수많은 수행납자들을 배출시킨 수행자들의 그리운 고향이다. 민족적 자부와 긍지의 근간인 문화전통의 보고이다.

해인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불교 모습이 좌우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해인사를 보면 한국불교가 보인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해인사는 한국불교의 마지막 보루요, 희망이다.

해인사는 결코 그곳에 뿌리를 둔 몇몇 문중의 절이 될 수 없다. 그곳의 재적 승려나 대중들에 의해 함부로 취급되어도 괜찮은 절이 아니다. 모든 불교인들의 고향이요, 민족의 성지인 해인사가 속물주의의 무대로 전락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직무유기다. 한국불교의 마지막 보루요, 희망인 해인사가 ‘최고’, ‘최대’를 좇는 속(俗)스러운 도량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좌시한다면 그들은 이미 불교인이 아니다.

대중의 불신과 원망을 불러일으키는 불사는 이미 불사라고 할 수 없다. 유지를 운운 하며 스승을 욕되게 하고, 중생들에게 상처와 실망을 안겨주는 행위를 간과하는 것은 후학들의 도리가 아니다.

일찍이 우리들은 자운, 성철 큰스님으로부터 부처님 법대로 해야한다고 배웠다. 그분들로부터 종도는 종지를 받들고 따라야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 가르침으로 볼 때 부처님 법대로 하지 않으면 불조가 이미 불조가 아니요, 스승은 이미 스승이 아님을 뜻한다. 종지를 받들고 따르지 않으면 종정도 이미 종정이 아니요, 방장도 이미 방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계율을 스승으로 삼고 살불살조의 정신을 따르라고 하신 자운, 성철 큰스님의 정신에 입각하여 몇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세계 최고의 해인사를 만들고자 한다면, 불교 세속화의 상징물인 최고 최대의 등상불이 아니고 이미 존재하는 세계 유일무이의 고려대장경의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창조적인 가꿈으로 눈을 돌리기 바란다.

둘째, 해인사를 세계 최고 수행도량으로 가꾸고자 하는 충정이라면 인류사회를 위기로 몰고 있는 물량제일주의를 부채질하는 최고 최대의 등상불 불사가 아니라 계율과 수행과 정법으로 세계 최고의 도량이 되도록 마음 쓸 일이다.

셋째, 진정 국운과 민족 화합과 국민 평화를 염원하는 불사를 하고자 한다면, 사부대중과 국민대중의 비난과 원망과 저항을 받지 않음은 물론 그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는 불사가 되도록 하는데 착안함이 옳다.

넷째, 창건이래의 수행가풍을 계승하고 중생들의 무명을 깨달음으로 회향하고자 하는 뜻이라면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신 부처님 유언에도 어긋나고, 외형으로 부처를 구하지 말라고 한 종지정신에도 맞지 않고, 부처님 법대로를 강조하신 자운, 성철 큰스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등상불 불사가 아니라, 계율로써 스승을 삼고 살불살조의 수행가풍을 살리는 불사에 집중해야 진정 해인사 답다고 할수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해인사는 그 산중의 몇몇 문중과 현재 대중들만의 것이 아니고 종단 사부대중의 절이요, 국민의 도량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몇 해전 성철스님 사리탑 문제가 논란을 일으킬 때부터 해인사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했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 하는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무기력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지금의 해인사 현재 대중들의 문제의식과 태도이다. 해인성지를 물량주의의 무대로 전락시키고 있는데도 해인사 재적 승려들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청정 수행도량 해인사를 세속화의 중심지로 타락시키고 있는데, 선방수좌들이 무겁게 침묵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산중이 무너지고 도량이 병들어 가고 있는데도 잘 지키고 잘 치료하고, 가꾸어 갈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그곳에 머물러 주인 노릇할 자격이 없다.

만일 현재 대중들과 재적 승려들이 지금과 같은 무책임과 죽은 침묵으로 무사 안일하게 처신한다면 종도와 국민들이 나서서 조직적이고도 강력하게 대응해 갈 것이다. 부질없는 상처를 남기고 혼란을 자초하는 소모적 상황으로 흘러가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빈다.

수경(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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