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여성상 양극화한 '그림동화',性가치관 왜곡 우려

  • 입력 2001년 6월 19일 18시 39분


전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동화의 고전’ 그림 동화가 어린이들에게 성(性)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림동화는 독일의 언어학자 야콥 그림(1785∼1863)과 빌헬름 그림(1786∼1859) 형제가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전래동화를 모아 발간한 것으로 원제는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 이야기’다.

동덕여대 교양학부 송희영 교수는 16일 한국여성학회에서 발표한 논문 ‘페미니즘 시각에서 본 그림동화’에서 “19세기 유럽 시민계급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림동화가 아무런 비판 없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애독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 교수는 “그림동화에 재현된 여성상은 무조건 아름답고 여리며 수동적인 ‘천사형’과, 추하고 사악하며 적극적인 ‘악녀형’으로 양극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물레바늘에 찔려 잠든 공주를 깨울 수 있는 것은 왕자의 입맞춤뿐이라는 설정은 여성의 수동적 이미지를 극도의 아름다움으로 포장해 여성성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심어준다는 것.

‘백설공주’ 역시 마찬가지다. 독사과를 삼킨 백설공주는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아무런 노력 없이 유리관에 누워 구원자를 기다릴 뿐이며 ‘때맞춰’ 나타난 왕자 덕분에 손쉽게 행복한 결말에 도달한다.

반면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마녀는 세 번이나 독으로 백설공주를 위협하며,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계모는 두 아이를 산 속에 버리자고 제안한다. 헨젤과 그레텔의 아버지는 계모의 계책을 막기위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으나 동화속에서 조금도 잘못을 추궁받지 않는다.

이처럼 그림동화의 등장여성들이 공주, 마녀, 계모 등 극단적인 양상으로 범주화되는 것은 시대적 배경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게 송 교수의 분석이다.

“그림 형제가 전래동화를 수집하고 정리한 19세기는 유럽의 시민계급 사회가 한창 번성하던 때다. 전형적인 시민계급 출신인 그림 형제는 동화를 지으면서 시민계급 감각에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고 시민사회 이데올로기에 부합되는 부분만을 첨가시켰다. 이는 바로 ‘가족, 시민사회, 국가’로 이어지는 가부장제의 확립이다.”

19세기 이전 전래동화에는 사회계층간의 첨예한 갈등문제가 자주 등장했으나 그림동화 이후 이 부분이 모두 사라졌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를 극명히 알 수 있다는 것.

송 교수는 “어린이들의 사회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동화가 이처럼 불균형적 성 역할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면서 “적극적으로 대안동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