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을 아랫배에 집중하세요. 기운을 몸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생각으로 깊게 숨을 들이쉬면서 하나, 둘, 셋….”
번잡한 도심을 담 하나 사이에 두고 고즈넉하기만한 평일 오후의 덕수궁을 찾은 시민들은 옛 건물 앞에서 온몸으로 ‘기운’을 모으고 있는 외국인들의 모습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매일 오후 덕수궁을 찾아 이처럼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이들은 코트니 로이드(22·여)를 비롯해 미국에서 건너온 4명의 단학 수련생.
최근 미국에서 동양의 명상수행법에 관심을 모으고 있는 단학을 익히면서 ‘본산지’인 한국을 찾아 고궁과 유서 깊은 전통사찰 등을 순례하고 있다.
천년의 기운이 서린 경주를 비롯해 많은 곳을 방문했지만 이들을 특히 매혹시킨 건 번잡한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고궁.
“서울이 뉴욕 못지 않게 번잡한 도시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도심에 이처럼 평화로운 고궁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서울에는 덕수궁과 경복궁이 있는 셈이죠.”
뉴욕에서 대학에 다니던 중 단학에 심취해 두달 전 한국을 찾은 로이드씨는 “특히 고궁에서 단전호흡을 하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 기(氣)가 느껴진다”며 덕수궁 인근의 수련원을 벗어나 고궁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에서도 수행을 하면서 한국인 ‘마스터’들로부터 한국 민요도 배우고 많은 얘기를 전해들어서인지 첫 방문임에도 한국이 별로 낯설지 않다는 네 사람.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로즈 몬타니아(여) 역시 “서울에 오니 고향에 온 것 같은 평화로운 기분”이라며 “열흘간의 휴가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말했다. 네 사람은 특히 “동양의 전통문화와 정신세계에 반하는 서양인이 점차 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단학에 심취해 이름도 바꿨다는 샤 아리랑은 “전통미와 현대미를 좀더 조화시킨다면 서울이 그 어느 도시 못지 않은 훌륭한 ‘순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