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동아일보 선정 '이 여름에 읽는 책 10'

  • 입력 2001년 6월 22일 18시 50분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미 종강을 하고 직장인들도 벌써부터 여름 휴가계획을 짜느라 골몰하고 있다. 지적 호기심과 문화적 소양을 채워줄수 있는 책과 함께 휴가를 보낸다면 더욱 의미있는 재충전이 되지 않을까.

동아일보는 각계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책의향기'자문위원단의 도움을 받아 여름휴가 동안 읽을만한 책 10권을 선정했다.

자문위원들로부터 올해 상반기중 출간된 책 중에서 3~5권을 추천받은 뒤 '책의 향기'담당기자들이 추천 빈도와 '깊이 있는 내용' '지적흥미 유발'등을 고려해 추천서적 10권을 엄선했다.>>

▼ 사랑을 위한 과학(토머스 루이스 외 지음·사이언스북스)▼

동그란 이마를 앞으로 쑤욱 밀어낼 정도로 유난히 발달한 대뇌신피질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간들. ‘이성적 동물’이라는 이들도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성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과학이 국경과 민족을 넘어 하나의 지배적 종교가 된 시대. 과학적 검증을 요구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버린 인간들에게는 사랑마저도 과학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이런 ‘과학적’ 인간들을 위해 뇌 연구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UCSF) 의과대학의 정신의학 교수들이 나섰다.

이들은 이성적 판단의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신피질이 발달한 덕택에 ‘만물의 영장’이 됐다고 믿는 인간들에게,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대뇌신피질의 이성이 아니라 대뇌변연계가 담당하는 감성이라고 설득한다.

조절 가능한 이성적 판단과 달리 사랑, 분노, 기쁨, 슬픔 등 통제할 수 없는 감성 때문에 이성을 잃곤 하는 인간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이들의 주장에 설득당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대뇌변연계의 감성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고, 이 ‘관계’에서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대뇌변연계가 발달하지 않은 파충류가 아닌 한,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서로의 대뇌변연계에 영향을 미치며 함께 변화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이렇게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사랑을 통해 결정된다. 저자들은 이렇게 우리의 미래가 현재 어떻게 사랑하고 사랑받는가에 의해 좌우됨을 과학의 성과를 빌어 일깨워준다.

끊임없이 사랑에 목말라하면서도 습관처럼 사랑에 인색해져버린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책의 향기’팀은 “인문학과 예술이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 ‘이성’적 지원을 하고 나선 정신의학의 절묘한 반주”에 높은 점수를 줬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최재천 지음/268쪽/ 8500원/ 효형출판▼

‘생물체란 유전자가 조종하는 생존기계’라는 이론이 각광을 받으면서, 동물과 인간의 행동 양식을 비교하는 책도 비교적 찾기 쉬워졌다. ‘작은 인간’으로 대표되는 마빈 해리스류의 문화인류학, ‘이기적인 유전자’로 대표되는 리처드 도킨스류의 사회생물학 모두 ‘동물 또는 인간집단의 특별한 행동이 어떤 장기적 생존전략 아래 비롯되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인 저자의 이 책도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사뭇 다르다. 관찰 대상에 대한 냉철한 분석 못지 않게 뭇 짐승과 생령(生靈)에 대한 따뜻한 애정의 시선이 흐른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다친 동료를 여럿이 들어나르는 고래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고, 유독 동족의 뼈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 코끼리의 행동에서 ‘애도의 정신’을 발견하며, 금슬이 좋지만 새끼 부양에 소홀한 배우자를 미련없이 떠나는 갈매기의 행동에서 ‘가족애’를 발견한다. 약할때는 합종연횡하고 강해지면 미련없이 갈라서는 개미 제국의 제휴에서 저자는 명분도 대의도 없이 손잡고 헤어지는 사람 동네의 정치판을 연상한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을 제외한 책의향기 자문위원 중 반수 이상의 압도적인 ‘천거’를 받았다. 시인 김갑수는 “생태학적 저술이라는 점에 앞서 저자의 내면이 엿보이는 진솔한 문체, 비전공자의 눈길을 빨아들이는 특유의 필력이 돋보이는 책”이라고 높은 점수를 주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생태학적 문제의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호소력있게 펼쳐놓았다는 점에서 크게 매력있는 책”이라고 평했다.

책을 출판한 효형출판의 관계자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과학’이 아닌 ‘비소설’ 장르로 소개됐으면 훨씬 많은 독자층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게놈(매틀 리들리 지음, 김영사)▼

인간 염색체가 23쌍이라는 것에 착안해 위트 넘치게 23장으로 구성한 이 책은 최근의 생명과학의 핵심 내용을 일목 요연하게 소개한다. 유전자 결정론, 노화의 비밀, 성, 지능 등 엄선된 23 가지 주제로 생명의 신비를 밝힌다. 가장 적은 노력으로 바이오테크 시대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생명과학에 관한 지식을 배양하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읽어 보라. 처음부터 통독하지 않아도 되며 구미에 따라 선별적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임경순)

▼선의 나침반(현각 지음, 열림원)▼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스님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푸른 눈의 승려 현각이 그를 불교로 이끌었던 숭산 스님의 법문을 녹취해 엮은 책. 불교의 기본적 목적과 구성에서부터 십이연기(十二緣起), 사성제(四聖諦), 카르마(karma·업·業) 등 불교의 핵심적 가르침까지, 불교의 가르침을 일상의 삶 속으로 끌고 들어와 이야기한다. 미국인 처럼 서구식 합리주의 교육을 받은 한국 젊은이들이 불교의 정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김형찬기자)

▼화인열전 1,2(유홍준 지음, 역사와비평사)▼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환쟁이’이라는 멸시를 받으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조선시대 국보급 화가 8명의 전기다. 단원 김홍도, 추사 김정희, 겸재 정선을 비롯 연담 김명국, 공재 윤두서 등이 그 주인공. 건조한 문체의 연대기 형식을 탈피해 그들의 예술적 성취를 인생 역정 속에 녹여낸 저자의 탁월한 서술방식이 돋보인다. 조선시대 명화를 원색 도판으로 감상할 수 있다.

(김수경기자)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부뢰 지음, 민음사)▼

중국의 저명한 번역문학가인 부뢰가 유럽에서 유학하고 있던 아들인 피아니스트 부총과 나누었던 편지 모음집. 아버지 부뢰의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부정(父情), 학문과 예술에 대한 독특한 관점 등이 유려한 문체를 통해 감동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부뢰는 아들에게 예술가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될 것을 강조했고 조국의 문화를 잊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현대 중국의 모진 격랑속에서도 아들에게 지극한 사랑과 모범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주려 애썼던 아버지의 모습이 애뜻하다.

(정재서)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구본형 지음,김영사)▼

“시키는대로 따라해온 직장인 근성을 죽여라. 골수 속에 사무친 자신의 것만 남기고 다 버려라. 그리고 ‘전문적 1인 기업가’로 환생해 자신을 불태워라.” 평범한 조직인간의 자기혁명을 선동하는 지침서. ‘진정한 나와 대면하는 변화의 기술’을 담았다. 첫걸음은 고용의 개념을 바꾸고 내면의 열정을 발견하는 것. 열정을 현실화시킬 구체적인 방법까지 소개했다. 미래가 암담한 직장인이라면 풍부한 사례를 동원한 설득에 기꺼이 승복할 것이다.

(윤정훈기자)

▼‘손님’(황석영 지음,창작과비평사)▼

황석영의 건재는 200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이다. 가볍게 하기, 내면세계 파고들기가 대세인 소설 판도에 정통적인 ‘심각한 서사’를 제시해 우리 문학의 결핍과 치우침을 보상해 준다. ‘손님’은 6 25를 경험한 황해도 출신 재미 목사의 고향 방문기. 은폐돼 왔던 우익청년들의 양민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외래 역병인 천연두를 손님으로 빗대 부르던 용법에 착안해, 사회주의와 기독교 사상의 도래와 충돌을 제목의 의미에 실었다. 죽은 자들의 유령이 계속 줄거리에 참여.

(김갑수)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이남호 지음, 현대문학)▼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해 보니 중고교 시절 교과서의 시 소설에 밑줄 치고 그 의미를 달달 외우던 일들이 참으로 황당하기만 했다. 많은 사람들은 한용운, 윤동주, 이효석의 작품도 중고교 시절 배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저자의 시각은 세 가지로 집약된다. 선정된 작품이 배우기에 적절한가, 지금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어떻게 가르쳐야 옳은가. 교사 지침서같은 느낌을 주지만 실은 중고교 국어시간을 거친 사람 모두의 시각 교정용이다.

(김갑수)

▼소유의 종말(제러미 리프킨 지음, 민음사)▼

전자매체의 혁명과 더불어 경제 구조가 바뀌고 있다. 저자는 ‘시장’이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고, ‘소유’가 접속(access)으로 바뀌는 현대 사회의 추세를 진단한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물적 자본이 아니라 지적 자본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된다. 따라서 부(富)는 물건이 아니라 개념, 아이디어, 이미지에서 나오게 된다. 산업생산 시대가 가고 문화생산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환)

■ 제1기 ‘책의 향기’ 자문위원

△구본형 (변화경영전문가)

△김갑수 (시인·출판평론가)

△김성곤 (서울대 교수·영문학)

△김원일 (소설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이승환 (고려대 교수·동양철학)

△이찬근 (인천대 교수·국제금융)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과학사)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중문학)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

<가나다 순>

■ 책의향기팀

△김차수 유윤종 서정보 김형찬 윤정훈 김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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