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강사 김지형 박사(국어국문학)는 최근 펴낸 저서 ‘한자 전래 이전 시기의 한국어와 중국어와의 비교’(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두 언어 사이에는 우연으로 해석될 수 없는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한자어 213자의 상고시대 발음을 재구(각종 이론을 바탕으로 추정하는 것)해 한국어 300여개 단어와 비교한 결과를 토대로 이같이 주장했다.
기존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하고 중국어는 한장(漢藏)어족에 속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두 언어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어순과 성조(聲調·언어의 단일 소리가 갖는 높낮이).
한국어의 경우 ‘주어-목적어-술어’의 어순을 취하는 반면 중국어는 ‘주어-술어-목적어’ 순이다. 한국어에는 성조가 없지만 중국어에는 성조가 있다.
이 밖에도 두 언어는 여러 측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탓에 그동안 학계에서는 비교 연구의 대상으로조차 삼지 않았다.
그러나 김씨는 우리나라에 한자가 전래되기 이전 시기의 중국어를 한국어와 비교함으로써 차용의 관점을 탈피하려고 시도한다.
김씨는 한자가 전래되기 이전 시기인 상고시대에는 어순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만큼 언어형태가 발전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조사나 전치사와 같은 품사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문자 하나가 문장 전체의 의미를 전달하기도 했다는 것. 즉, 상고시대에는 ‘어순’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김씨는 중국어에 성조가 나타난 것도 상고시대 이후라고 지적하며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나간다.
중국어의 ‘頭(두)’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를 상고시대 발음으로 재구하면 발음기호로 [dug](둑)이 되는데 이는 우리말 ‘대가리’, ‘대머리’에서 나타나는 ‘대-’와 연결된다. ‘대-’의 원시어 재구형은 ‘달’. 즉, ‘머리’의 뜻을 갖는 ‘대-’라는 접두어는 결국 ‘頭’와 자음의 대응을 이룬다는 것.
중국어 ‘人(인)’과 우리말 ‘놈’, ‘님’, ‘남’도 대응을 이룬다. ‘人’의 상고시대 재구형은 [njin](니인)이고 ‘놈’, ‘님’, ‘남’의 어두 자음은 모두 [n]음가를 갖는다.
‘河(하)’의 상고시대 재구형 [gar](갈 또는 가르)은 ‘강(江)’의 옛말인 ‘가람’과 일맥상통한다. 이밖에도 두 언어의 많은 단어들이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고 김씨는 주장한다.
성균관대 중문학과 전광진 교수는 이에 대해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만하지만 연구된 한자의 수가 적어 정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