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베이거스'를 아시나요?…가리봉5거리 복합 여흥공간

  • 입력 2001년 6월 26일 19시 01분


월요일 오후 3시경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과 금천구 가산동 경계에 있는 가리봉 5거리. 새로 문을 연 S경품오락실을 홍보하기 위한 내레이터 모델들의 ‘춤판’이 한창이다.

‘가오리’(가리봉 5거리의 속칭)의 중심인 이곳 횡단보도 앞 인도에서 이들은 떠나갈 듯한 음향에 맞춰 온몸을 뒤흔드는 격정적인 테크노댄스를 추었다. 도심 속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탓인지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다시 뜨는 ‘가리베이거스’〓지난 주 토요일 오후 7시, 이 근방에서 ‘가오리의 줄리아나’로 불리는 K나이트클럽 앞. 호객 중인 ‘삐끼’들 사이로 큼직한 글자의 광고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제목은 ‘가리봉 5거리의 화려한 부활’.

가리봉동 주민 고태진씨(26)는 “IMF 사태 전 시끌벅적했다 잠잠해 졌던 이 동네에 요즘 이런저런 먹을거리 볼거리가 생겨나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대생 윤모씨(19)는 “신림동이나 강남역 근처처럼 시끌벅적하지 않아 친구들끼리 가볍게 맥주 한 잔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3500원이면 만화가게에서 종일 만화책을 볼 수 있고, 4000원이면 괜찮은 맥주 안주를 시켜 먹을 정도로 물가도 싼 편이다. 4000원에 3편의 성인영화를 동시상영해 주며 8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성인전용극장’도 행인들을 유혹한다.

‘가오리’부터 경기 광명시 철산동 일부에 새로 생긴 먹자골목에 이르는 ‘가리베이거스’에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가리베이거스’는 이 곳이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처럼 볼거리와 놀거리가 많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90년대 중반까지 ‘유흥가’로 이름을 날렸던 이곳은 최근 들어 의류할인점, 고깃집, 호프집, 오락실 등이 뒤섞인 ‘복합 여흥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금천구청 정관우 주임은 “공단지역에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줄고 있는 대신 벤처타운이 형성되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유동인구는 다소 줄었지만 젊은층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업소들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1번지 ‘가오리’〓영화 ‘박하사탕’이나 ‘장밋빛 인생’에 등장했던, ‘칙칙했던’ 가리봉동의 이미지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오거리의 한 축에는 ‘패션 타운’이 들어서고 있다. 닉스 스톰 서스데이아일랜드 리트머스 등 인기 내수브랜드를 내세운 상설 할인매장이 30여곳에 이른다. 보통 40∼60% 할인판매하지만 80%까지 싸게 파는 것도 있어 ‘질이 좋은’ 7000원짜리 바지, 5000원짜리 티셔츠도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다. 광명시 쪽으로 더 가면 노티카 가이거 폴로 갭(GAP) 라꼬스떼 등을 파는 창고형 매장도 있다. 의류공장이 이사를 가면서 그 자리에 재고 창고와 연계된 직영매장들이 들어선 것. 물건이 새로 들어오는 때에 맞춰 매주 금요일 오전쯤 찾아갈 만하다.

쇼핑 손님이 늘면 음식점 고객도 느는 것은 상식. ‘신장개업’ 표시를 붙여놓은 횟집이나 돼지껍데기집, 고기뷔페집도 많다. ‘가오리’에는 경품오락실도 여러 곳 있다. 크레인으로 인형을 집어 올리거나 살아있는 바닷가재를 집게로 들어올리는 ‘엽기적’ 게임도 성행하고 있다. 각종 인형을 경품으로 주는 사격게임장도 있다.

노래방에는 외국인 노동자 덕분에 한국 중국 필리핀 러시아 등 8개국 노래가 거의 다 있다. 가리봉 시장 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조선족 타운’이 있고 어려운 한문 간판을 내건 ‘중국 본토 음식점’도 눈에 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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