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風水는 땅이 지니고 있는 陰陽五行(음양오행)과 調和롭게 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인간이 달에 가고 컴퓨터가 판치는 지금까지도 집이나 묘터는 물론, 공장, 심지어는 사무실의 집기 위치까지도 風水를 고려하여 배치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바람과 물로 표시했을까. 周易의 澤風大過卦(택풍대과괘)는 물(연못) 위에 바람이 거세게 부는 형상으로 砂上樓閣(사상누각)처럼 아주 위태로운 상태를 뜻한다. 죽은 사람의 生氣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멈추게 된다.
그러니까 故人의 生氣가 흩어지지도, 또 한 곳에 멈추지도 않게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風과 水를 피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우리나라는 三國時代부터 風水를 믿었던 것 같으며 高麗 太祖의 訓要十條(훈요십조)나 朝鮮의 李成桂가 都邑을 정했던 과정에서 볼 때 매우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風水, 단순히 迷信(미신)이라고 外面하는 것도 옳지 않겠지만 盲信(맹신)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 중국의 例를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隋煬帝(수양제)는 어떤 이가 조상의 묘터가 좋다고 아부하자 버럭 화를 냈다.
이놈아 묘터가 나빴다면 내가 天子에 오르지 못했을 테고 좋았다면 내 동생이 戰死하지도 않았을 것 아니냐?
宋代의 유명한 간신 蔡京(채경)은 風水狂이었다. 거금을 주고 錢塘江(전당강) 옆에 있는 明堂자리를 사서 조상의 묘를 썼지만 후에 罷職(파직)당하고 집안이 風飛雹散(풍비박산)당했다. 반면 自治通鑑(자치통감)을 쓴 宋의 司馬光(사마광)은 葬論 (장론)이라는 글을 써서 迷信性을 파헤쳤을 뿐만 아니라 조상의 묘도 일부러 風水에 따르지 않았지만 그의 家門은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風水는 단지 마음 이 아닐까.
집터가 좋지 않다고 고위 정치인들이 줄줄이 이사를 가더니만 이번에는 모 고위 정치인의 移葬(이장)을 둘러싸고 風水論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다음에는 八字 에 대해 알아본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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