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옥밀집지역 가회·삼청동 일대에 부는 변화의 바람

  • 입력 2001년 7월 3일 18시 56분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 밀집지역인 북촌(가회, 삼청동 일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91년 한옥보존지구 해제에 이어 99년 신축 건물의 층고 제한이 완화된 이후 한옥들이 새로운 형태의 주택이나 예술공간으로 개조되고 있는 것. 대부분 기존 한옥 처마나 골조를 유지한 채 현대적 내부 공간으로 꾸며지고 있어 고전미가 물씬 풍기는 기존 한옥들과의 불협화음은 없다. 일부 특색 없는 빌라나 다가구주택들만이 옥에 티.

▽북촌은 예술, 문화의 거리〓북촌의 변화 바람은 인사동이나 청담동 등지에서 하나둘씩 옮겨온 화랑들로부터 시작됐다. 재동초등학교와 정독도서관 사이에 있는 갤러리 서미는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검은 기왓장이 얹힌 전통 한옥이지만 내부는 현대적인 감각의 흰색 인테리어로 멋을 냈다.

큐레이터 김소원씨(29)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고려해 만든 건물”이라며 “은은한 전통 가옥의 이미지가 전시품의 품격을 높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사동에 있던 비원화랑과 인화랑도 올 3월 이 곳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인화랑 관계자는 “인사동이 먹고 마시는 거리로 바뀌면서 실제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보다는 단순히 아이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재동은 화랑을 찾는 사람은 적지만 진짜 관심있는 마니아들이어서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출판사 건물도 있다. 가회동 동사무소에서 북쪽으로 100여m 올라가면 볼 수 있는 김영사 사옥. 기존 가정집을 사무실로 개조한 이 건물은 가회동에서는 드문 서양식 주택이다. 하얀 페인트를 칠한 건물 테라스에 앉아 맥주라도 한 잔 들이켜면 옛 정자의 정취가 느껴진다. 종교 시설도 눈에 띈다. 김영사 사옥 길 건너편에 있는 안국선원. 조계종이 지난해 11월말부터 운영하고 있는 이 곳은 겉보기에는 고급 빌라나 문화공간을 연상시킬 정도로 세련된 외양을 자랑한다. 단청과 기와로 상징되는 기존 불교 사찰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 큰길을 사이에 두고 대각선 방향에 있는 가회동 천주교회와 ‘이질적 조화’를 이룬다.

▽리모델링해서 살아요〓도심 속 작은 공간에 이처럼 다양한 생물이 공존할 수 있을까. 예쁘게 꾸며 놓았다고 입소문이 난 최호근씨(50·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작은 한옥집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노란 털북숭이 푸들 한 마리가 달려와 반겨준다. 강아지 3마리와 새 한쌍, 각종 자생화가 마당에서 제각기 자태를 뽐내고 있다.

“3년 전 이 집을 사면서 리모델링을 했어요. 건물 골조는 그대로 두고 벽이랑 마당을 제 취향에 맞게 고쳤죠.”

최씨의 취향은 ‘자연주의’. 대지 44평의 아담한 집터 곳곳에 금난화, 쑥부쟁이, 인동 등 150여종의 화초를 심었다.

강남의 아파트에 살면서 대학로에서 건축스튜디오 아키반을 운영하고 있는 건축가 김석철씨(58)도 주거 및 작업 공간을 가회동으로 옮겨오기 위해 이 곳에 있는 한옥 두 채를 매입해 둔 상태. 김씨는 각각 45평과 55평 규모인 이들 한옥을 터서 45평짜리는 유리 구조물로 된 작업실, 55평짜리는 기존 한옥 지붕과 골조를 원형 그대로 둔 채 내부를 현대적 감각으로 리모델링할 계획.

김씨는 “북촌은 전통적인 옛 양반 주거지로 역사적으로나 풍수지리 측면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라며 “골목길과 같은 기존 도시 구조와 건축 양식을 보전하면서 주민들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블록 단위로 재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송진흡·김현진기자>jinhup@donga.com

▼3·1운동 참여 이끈 '역사의 현장' 등 그대로▼

서울 북촌에는 고풍스러운 한옥이나 근대사의 무대가 됐던 건물들이 많다. 조선 왕조 창건 이후 잘 나가던 양반들과 고위 관료들이 모여 산 지역으로 일제 강점기까지 그 명성이 이어졌기 때문.

우선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올라가면 대동정보산업고 진입로 옆으로 인촌 김성수의 옛집(계동 130)이 나타난다. 이곳은 1919년 2월11일 최남선의 편지를 받고 상경한 이승훈이 송진우와 만나 기독교측의 3·1운동 참여를 이끌어낸 역사적 장소.

좀더북쪽으로올라가면 우리나라 대중 목욕탕의 효시인중앙탕이 나오고 옆 골목 두 번째 집이 만해 한용운이 거처하던 집. 이 집은 3·1운동 당시보성고보교장이었던 최린이 한용운을 찾아가 불교계의 3·1운동 동참을 확약받은 곳이다.

갑신정변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김옥균 박영효 등 정변 주역들의 집과 우정국을 비롯한 정변 현장이 개화파의 스승이었던 박규수의 집터(헌법재판소 구내 서북쪽 백송이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반경 300m 안팎에 모여 있다.

<송진흡기자>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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