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시인·방송인)
<프라하의 봄, 닥터 지바고, 희랍인 조르바>
영화 ‘프라하의 봄’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원작이다. 음반은 영화가 아니라 원작의 제목으로 출시됐다. 80년대 말 직장에 다니면서 때로 생활에 찌들었을 때 그 고통과 가슴앓이를 잠시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음악이다. 한 마디로 영화와 음악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음반 중 ‘은밀한 편지’ ‘숲이 우거지는 길’ 등 테마 곡들 사이로 대니얼 대이 루이스, 줄리엣 비노슈, 레나 올린 등 주인공의 얼굴들이 겹쳐진다.
‘닥터…’는 처음 사춘기를 맞은 내 영혼을 장식한 뒤 내 평생의 테마곡이 됐다. 살다보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음악이 있다. 영화 속 지바고의 인생은 운명의 장난으로 끊임없이 어긋난다. 그 엇갈림은 사랑에서나 일에서나 내게도 그랬다.
이에 비하면 ‘희랍인 조르바’는 좀 웃기는 에피소드가 있다. 대학 시절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괜히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게 ‘인기’였다. 그 음반은 희귀종에 속했다. 카페를 하던 한 어른이 그 음반을 갖고 있었는데 이리저리 부탁해 비위를 맞춰가며 어렵게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정은아(프리랜서·MC)
<어둠 속의 댄서, 와호장룡,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원스…’는 80년대 중반 대학 시절 때 봤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의 순수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하는 게 가슴을 아리게 했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386’세대라면 이 음반을 들으며 비슷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어둠…’은 스토리보다 음악이 더 귀에 남는다. 주인공으로 출연한 아이슬란드 출신의 가수 비욕의 노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또 이 여자의 눈빛과 풍부한 색채를 갖고 있는 음성을 잊을 수 없다. 시사회가 끝난 뒤 한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와호장룡’은 무협 액션이지만 음악적인 조화가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무협 액션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무술 장면 외에도 지고지순한 러브 스토리와 요요마의 첼로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김지영(국립발레단수석무용수)
<지젤, 러브 어페어, 원 나잇 스탠드>
직업 때문인지 아무래도 내 인생을 장식한 영화 음악 넘버 원은 ‘지젤’이다. 발레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된 1988년경 이 작품을 봤다. 같이 발레를 배우던 친구의 어머니가 보여줬는 데 체구가 작아 한 자리에서 친구와 둘이서 본 기억이 난다. 발레 공연을 보기도 전에 처음 본 발레 영화다. 지금 생각하면 발레 ‘지젤’의 1막 음악이 사용됐는데 너무 아름답고 멋있었다. 그래서 더 발레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백야’ ‘센터 스테이지’ ‘빌리 엘리어트’ 등 이후 발레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있었지만 음악만은 ‘지젤’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러브…’는 영화보다 음악을 먼저 알았다. 90년대 중반 파트너였던 (김)용걸 오빠(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가 좋아하는 음악이었다. 가끔 차를 얻어탔는데 그때마다 이 음악을 틀어줬다.
웨슬리 스나입스와 나스타샤 킨스키가 주연한 ‘원 나잇…’의 음악도 인상 깊었다. ‘스와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영화에 흐르는 재즈 음악은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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