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달이 되면 학교에서 늘 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입니다. 아이들은 흔히 해저 도시나 우주기지를 그립니다.
우리들은 과학이 많이 발전하면 해저나 우주가 당연히 인간의 차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나 우주에는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죠.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은 잘 다듬어 놓은 과학 상상화 같은 동화입니다. 영양소가 따로 첨가된 음식물, 영양소 별로 나누어지는 음식물 처리기, 전자우편이 오는 자전거, 인공 성장 호르몬을 주입한 쌀, 목소리로 통제되는 학교 시스템, 인간에게 이식 할 장기를 몸 속에 키우는 돼지 등이, 자를 대어놓고 그린 것처럼 말끔한 k-32지역에 사는 진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입니다. 언뜻 보기에 그곳은 사시사철 꽃이 피어있고, 공기 조절 시스템이 있고 모노레일이 있고 노후는 국가가 모두 관리해 주는 아무 걱정없는 행복한 곳으로만 보입니다.
그런데 , 책을 펼치면 첫 장면부터 진희 어머니 아버지는 싸움을 하십니다. 더구나 싸우시는 이유가 이상해요. 아버지가 집안에 쑥갓 꽃을 가지고 들어 왔다고 싸우네요. 아니 꽃보다는 그 꽃이 맺을 씨가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는 도둑질 이라나요? 식물은 모두 자라서 꽃피고 열매맺고 씨를 남기는 게 자연의 이치이거늘, 그 씨를 가지는 게 도둑질이 되는 그런 세상이 진희가 사는 세상인 거예요. 그래도 사람들은 모두 과학이 발달한 덕에 그것이 가능해 졌다고 다들 좋아하죠. 농부들은 매년매년 종자회사에서 ‘씨를 남기지 않는 씨’를 사다가 써요. 땅에서 새싹으로 나와 다시 씨를 남기고 죽는 ‘식물의 한 살이’는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예요. 이런 사회에서 씨앗을 지키려는 진희 아빠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책은 잘 쓴 문장과 탄탄한 구성 때문에 탐정소설처럼 단박에 읽힙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책을 손에서 놓기가 무거운 건, 책 안의 박제화된 생활이 지금 우리 사는 현재에서 출발했다는 거예요. 우리가 사는 세상도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이렇게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 곳곳에서 눈치 챌 수 있어요.
요즘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세요. ‘과연 발달은 발전인가’ 하는 문제를 말이죠. 엄청나게 발달한 과학이 만들어 내는 사회가 이 책 속의 사회 같다면?
발전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동화예요. 초등학교 고학년용.
김혜원(주부·서울 강남구 수서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