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세무조사'공방 지식인 참여를 보고]타협의 길 제시하자

  • 입력 2001년 7월 16일 19시 33분


최근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과 언론계의 공방에 참여하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언행을 해 지성계 전체의 풍토를 흐리고 있다는 걱정과 개탄의 목소리가 자주 들려 온다.

개중에는 지식인 본연의 자세에서 크게 벗어나 정치단체나 이익단체에 밀착해 마치 대리전을 치러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 객관적 소신에 근거해야

언론의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에서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때에는 반드시 찬성파와 반대파가 치열한 논쟁을 벌이며 비등한 여론을 형성하게 마련이고, 여기에서 지식인의 참여는 불가피해진다.

이 때 지식인에게는 권력의 압박이나 물질적 유혹에 좌우되지 않고 이성으로 다져진 객관적 소신에 근거해 의견을 제시해야할 임무가 주어진다. 그것이 바로 근대 서구사회에서 지식인이 취해야 할 바른 자세로 인정돼 왔다.

흔히 20세기 후반은 포스트모던의 시대라 불린다. 포스트모던의 시대란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 하나의 정의, 하나의 신념을 인정하기보다 다양성과 다원성을 용납하며 상대주의를 따르는 시대를 뜻한다. 사물을 어떤 시각, 어떤 패러다임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럴 수도, 혹은 저럴 수도 있다는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고방식이다. 기존의 고정관념은 도처에서 도전받는 그런 시대인 것이다.

◆포스트모던사회의 다양성

본래 민주주의는 서로의 의견 대립을 전제로 한다. 하물며 다양성과 상대주의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모순과 갈등이 한층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다. 모순과 갈등이 심화하면 사회는 통합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어 사회적 일탈 행위가 성행하고 사람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상실해 방황하게 된다.

이런 병리현상의 확산을 막고 사회의 건전성을 회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의견 차를 보이는 이해당사자들이 대화에 적극 참여해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을 우리는 지난 반세기에 걸쳐 자주 목격해왔다. 냉전의 해소와 남아공의 민주화에서 우리는 이를 목격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끝없이 화해를 모색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의 지식인은 계몽주의, 낭만주의, 고전주의, 모더니즘 등 그 시대에 유행했던 사조들을 흡수했을 뿐, 독자적인 학풍과 연구활동을 개발해온 경험이 없다. 물론, 우리도 근대사회 이전에는 동양 문화권 속에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의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고 계승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의 성격과 가치관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동양사상의 정수는 도외시되고 신분지향적, 가족중심적 사고가 가득하다. 당쟁을 일삼는 정치의식의 부끄러운 잔재도 만족스러울만큼 불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적능력 도덕성 향상을

유감스럽게도 우리 지식인의 지적, 도덕적 성숙도는 선진국에 비해 수준이 낮고 결함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포스트모던의 문화적 풍토에 적응해 훌륭한 토론문화를 이뤄내지 않으면 안된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정신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지식인들이 사회에 진지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하고 대화와 타결의 방도를 슬기롭게 찾아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결코 지식인다운 지식인으로 보여질 수 없다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을 권한다고 해서 자신의 확고한 의지와 정체성을 무시해도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지식인이 지식인답게 자신의 지적 능력과 도덕성을 향상시키면서 상대방과의 대화를 모색해야만 그 노력은 더욱 빛나고 결국 사회의 진보에 크게 기여하게 되리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만갑(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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