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국문학과 임기중 교수가 전남 광주에서 입수한 이 편지는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풀려나기 직전인 1817년 전남 강진에서 경북 인동 약목에 사는 신영노(申潁老)라는 젊은이에게 써 준 것이다.
‘증신영노(贈申潁老)’라는 제목의 이 편지는 세로30cmx가로120cm 크기의 창호지에 쓰여진 것으로 당시 궁핍했던 다산의 유배 생활을 짐작케한다.
신영노를 통해 신영노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신영노의 아버지에 전하는 글과 자신이 유배생활 중 저술한 책의 상세한 목록(250권에 달함), 책을 전하게 된 동기 등을 깔끔하고 정돈된 글씨로 쓰고 있다.
다산은 편지에서 “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내가 쓴 책들이 한 권이라도 후세에 전해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며 자신의 저술이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다산은 또 “어릴 적 울산도호부사, 진주목사 등을 지낸 아버지를 따라 영남 지역에서 머무는 동안 선생(신영노의 아버지를 말함)을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면서 “선생의 아들 신영노가 찾아왔기에 반가이 맞이하여 십수년간의 이야기를 나누니 만감이 교차했다”고 적고 있다.
임 교수는 “다산은 1816년 자신에게 학문적 영감을 불어넣어주던 형 정약전(1758∼1816)이 사망하자 실의에 빠져 있다가 신영노가 강진으로 찾아오자 자신의 저술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신이 저술한 모든 책을 신영노를 통해 그의 아버지에게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편지는 다산이 유배생활 동안 지은 책의 목록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당시 다산의 저술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를 자세히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史料)로 평가된다.
외교정세 및 군사문제 등 국가 방위에 관한 연구서인 ‘비어고(備禦考)’와 춘추(春秋)에 나오는 주대의 예제를 정리한 ‘춘추고징(春秋考徵)’이 대표적인 예. 현재 30권이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 ‘비어고’는 12권으로, 12권이 저술된 것으로 전해지는 ‘춘추고징’은 10권으로 적혀있어 나머지 ‘비어고’ 18권과 ‘춘추고징’ 2권은 1817년 이후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산의 후손이자 다산의 저술을 전문으로 출판해온 현대실학사 정해렴 사장은 “신영노의 아버지는 정확한 이름을 파악할 수 없지만 당시 유림(儒林)에 묻혀 학문에 몰두하던 실력있는 유학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편지는 위당 정인보(1892∼1950)가 쓴 글을 모은 ‘담원국학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