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내 한 커피숍. ‘레이서’ 박장호씨(36·사업)는 자신의 스포츠카에 대한 설명에 여념이 없었다. 박씨의 스포츠카는 다름 아닌 무선조종(RC·Radio Control) 자동차. 실제 스포츠카를 8분의 1로 정밀 축소해 만든 ‘꼬마 스포츠카’다.
9월 중순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RC 스포츠카 세계선수권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하는 박씨는 “주말이면 서울 근교에서 가족단위로 무선조종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는 등 이제 RC는 하나의 ‘레저문화’로 자리잡고 있다”고 소개했다.
▽무선조종과 마니아〓무선조종이란 자동차나 배, 비행기 등을 정밀 축소해 만든 모형을 라디오 조종기를 통해 움직이는 것. 동력으로 항공유를 사용하는 엔진이나 전기모터가 주로 쓰인다.
자동차와 조종기 등을 포함해 20만원대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고가품이지만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폭넓은 마니아층이 있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RC 인구는 대략 20만명. 이 가운데 정기적으로 무선조종을 즐기는 사람은 1만5000명, 각종 레이싱에 출전하는 선수는 1000여명에 이른다.
모형제조업체인 아카데미사에 따르면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성인 대 청소년의 비율이 20 대 80이었으나 최근에는 60 대 40으로 역전됐고, 특히 여성 고객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왜 무선조종인가〓“레이싱 경기장에서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RC 스포츠카를 보고 있노라면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RC 마니아인 삼성물산 엄창섭 상무(49). 10년 동안 32대의 RC 자동차를 보유한 ‘자동차광’이기도 하다. 엄 상무는 “자동차에 대한 지식과 함께 로봇 작동의 원리까지 터득하게 되는 훌륭한 레저스포츠”라며 ‘RC 예찬론’을 늘어놓았다.취미로시작했던 RC 덕분에 대학 특기자전형에 합격한 마니아도 있다.
모형제조업체인 아카데미과학의 사원이자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이지영씨(34)가 그 주인공. 지난해 연세대 재료공학과에 입학한 이씨는 “취미삼아 만들었던 RC 자동차 덕분에 직장을 구하는 것은 물론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까지 열렸다”며 “자동차의 부품으로 최첨단 소재가 많이 쓰이는 만큼 대학 공부가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주말이 즐거운 RC 마니아〓RC 전문숍인 ‘방배하비아카데미점’의 송명준씨(32)는 “최근 들어 부부나 부자 등 가족단위 고객이 점차 늘고 있다”며 “아들의 장난감을 사러 매장에 들렀다가 마니아의 길로 들어서는 아버지도 많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열리는 RC 자동차 경주대회는 모두 100여차례. 실제로 RC 전용 경기장인 경기 이천시 ‘스카네서키트’, 고양시 일산 ‘랩턴스피드웨이’ 등은 경기가 열리는 주말마다 레이서들과 가족들로 성황을 이룬다.
“찢어지는 듯한 엔진소리와 엄청난 스피드, ‘꼬마’라고 우습게 보다간 큰 코 다칩니다.”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앞두고 이날 정보교환차 코엑스몰에 모인 박씨와 이씨는 서로 우승을 장담하며 환하게 웃었다.
주요 무선조종 관련 사이트 | |
황찬영의 RC 이야기 (rcholic.com.ne.kr) | RC 마니아 황찬영씨가 운영하는 개인 홈페이지. 초보자를 위한 강좌 및 쇼핑몰이 마련돼 있다. |
무선모형 (www.myrc.co.kr) | 잡지 ‘무선모형’이 운영하는 사이트. 동영상강좌, 신제품 리뷰, 무선업계 최근 동향이 강점. |
RC 카액션 (www.rccaraction.com) | RC 전문 해외 사이트. 세계 RC 마니아들의 최근 동향, 대회 일정 등 소개. |
아셈하비 (www.asemhobby.co.kr) | 무선모형 및 플라모델 포털사이트. 무선조종 모델 제작법 및 제품 안내. |
하비뱅크(hobbybank.co.kr) | RC 전문 쇼핑몰. 제품 정보 및 상품 검색을 할 수 있다. |
▼변속기… 머플러… "와! 없는 게 없네"▼
‘RC 자동차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RC 마니아들이 가장 많이 찾는 무선조종 제품은 단연 자동차. 실제 자동차를 4분의 1에서 12분의 1까지 정밀 축소해 만든다. 종류만도 페라리 람보르기니 렉서스 등 스포츠카에서부터 세단까지 ‘없는 게 없다’는 게 제조업체 관계자의 설명.
모형 자동차이지만 실제 자동차처럼 바퀴잠김 방지식 제동장치(ABS) 유압쇼바 자동변속기 머플러 등이 장착돼 있다. 단 ‘꼬마’ 자동차답게 1기통 엔진, 2단 자동변속기 등이 쓰이고 오일탱크도 200㎖ 우유 팩 반 정도(125㏄)의 분량이면 가득 찬다.
타이어는 미쉐린 한국타이어 등 제조업체의 로고가 박힌 고무타이어나 스펀지 재질의 경주용이 주로 사용된다.
동력에 따라 항공유를 사용하는 GP(Gas Power), 전기를 사용하는 EP(Electric Power) 차량으로 나뉜다. 모두 라디오 주파수를 이용해 별도 조종기로 운전을 한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EP 차량의 경우 조종기 자동차 충전기 등을 합쳐 대략 20만∼40만원, GP 차량은 45만∼90만원대지만 축소 배율과 튜닝 정도에 따라 가격은 훨씬 올라갈 수 있다. 아카데미과학 RC사업팀의 이지영씨는 “일반 완구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무선조종 자동차는 소비자가 임의로 분해해 부품을 교체하고 조종기와 자동차 사이에 교환되는 라디오 주파수를 변경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