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꽹과리 소리가 너무 자주 들리던 시절, 외출에서 돌아온 사람들 옷에 매케한 최루탄 냄새가 묻어 있던 시절, 한 종교학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고뇌에 찬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죄 없는 아이들이 하염없이 죽어나가는 이 시절에, 나는, 마치 이것밖에는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쐐기 문자로 쓰여진 4000년 전 아시리아 문서의 번역본을 읽고 있소.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때로는 매우 부끄럽소.”
나는 그분에게 대들었다.
“그것이 왜 부끄러운가요? 세상에는, 당대의 이념에복무하는 사람도 있고, 인류가 오래 섬겨온 것에 봉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리로 뛰쳐나가 피를 흘리는 사람이 있을수록 아시리아 문서를 읽는 사람도 있어야지요. 고대 점토판의 쐐기 문자를 읽는 사람이 없다면 ‘길가메시 서사시’는 빛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내 생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 그분은 주위로부터, 아시리아 점토판이 이 시대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요, 하고 묻는 듯한 따가운 시선을 받았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인문학의 미래는 그 종교학자 같은 분의 차분한 시선에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불교문화,그리스신화서 자유롭지 않다▼
‘왜 하필이면 그리스 신화인가,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신화 읽기와 신화 다시 쓰기를 즐기는 내가 자주 받아왔고 지금도 자주 받는 질문이다. 나는 반문한다. 왜요? 안 되나요? 그러면 무얼 해야 하나요?
미국 문화의 영향 때문에, 우리 글을 배워야 할 나이에 영어를 배워야 했고, 우리 신화를 읽어야 할 나이에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리스 신화를 읽어야 했다.
그래서 이가 갈린다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반문한다. 왜 하나만 읽고 하나만 배워야 하나요? 둘 다 읽고 둘 다 배우면 왜 안 되나요?
우리 문화 유산 중에서 가장 풍부한 것이 불교 문화 유산인데 나는 이 불교 문화 유산이 그리스 신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남부에다 그리스계 식민 국가를 세운 것은 너무나 분명한, 우리가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우는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의 간다라 인들은 스투파(탑)를 세웠을 뿐 불상을 깎지는 않았다. 불상 조성은, 그리스인들에게 묻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영웅의 석상을 조성하는 풍습이 간다라로 들어오면서부터 생긴 새로운 문화 풍속이었다.
나는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 고대 그리스 신화를 떠올려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불교 미술이 간다라 불교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불교 문화, 결국은 우리 문화가 그리스 신화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꿈에 그리던 진품들을 서울 한복판서 만나다니▼
서울 예술의전당 ‘그리스 로마 신화전’에 나온 대리석상, ‘쉬고 있는 헤라클레스’ 앞에 섰다. 천하장사 헤라클레스는 머리에는 사자 가죽을 쓰고,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있다. 나는 그 헤라클레스 앞에서, 대영박물관에서 본 ‘봐즈라파니(집금강신·執金剛神)’, 바로 간다라에서 조성된, 머리에 사자 가죽을 쓰고 손에는 벼락, 즉 금강을 든 금강역사 돋을새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금강역사의 ‘금강고(金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