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상징 가운데 하나이다. 자고로 ‘山獸之君’(산수지군·산짐승의 왕)으로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 호랑이를 보고 만든 글자가 虎(호랑이 호)다. 한자의 조상인 甲骨文(갑골문)을 보면 호랑이가 앞발을 쳐들고 서 있는 모습이다.
사람의 모습도 바뀌듯 한자도 수 천 년 동안 많이 바뀌어 현재 楷書(해서)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그래서 그림에 가까운 갑골문과 현재의 문자는 차이가 많다.
한편 虐(사나울 학)자는 虎자와 사촌간의 글자다. 어쩐지 모습이 비슷하다. 즉 虎자의 맨 아래 ‘사람인’(인)이 호랑이의 뒷발과 꼬리를 그린 모습이라면 虐자의 ‘l’은 날카로운 발톱을 그린 것이다. 호랑이가 공격하기 위해 발톱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학질의 학자는 虐자에 다시 ‘疾病’(질병)을 뜻하는 병들어기댈역(병들 녁)자가 덧붙여진 모습이다. 병들어기댈역은 환자가 침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게 보이는 까닭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수천 년 동안 한자가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들어 기댈역이 있는 한자는 모두 疾病과 관계가 있다. 痛(아플 통) 疫(염병 역) 痼(고질 고) 疲(피곤할 피) 癒(병나을 유) 등.
그래서 학질이라면 몹시 사나운, 끔찍한 질병이라는 뜻이 된다. 영어로 ‘말라리아’라고 하는데 모기가 옮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증세가 하루 걸러 나타난다고 하여 우리 조상들은 ‘하루걸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무척 고통스럽고 무서운 병이다. 오죽했으면 ‘학질’이라고 했겠는가.
학질은 60년대에 많이 발생하다가 80년대 중반에 소멸된 것으로 여겼던 것이 93년에 휴전선 부근에서 병사 1명이 발병함으로써 재현되었다. 그러다 재작년에는 무려 3800여명이 발병했다고 한다. 최근 무더위와 집중호우로 말라리아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한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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