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가 아름답다"…'옛것' 찾는 마니아 부쩍 늘어

  • 입력 2001년 7월 24일 19시 03분


로모카메라 동호회 '로모이즈낫로모'회원들이 각자의 카메라를 자랑하고 있다.
로모카메라 동호회 '로모이즈낫로모'
회원들이 각자의 카메라를 자랑하고 있다.
《“따뜻한 인간미를 찾아라.” 첨단 디지털시대에 때아닌 ‘아날로그 열풍’이 불고 있다. 컴퓨터,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등 각종 디지털 기기의 홍수속에서 투박하고 단순한 아날로그 제품을 찾는 마니아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 수십년전에나 유행했을 법한 기계식 카메라부터 진공관 앰프, LP디스크 등 아날로그 마니아들의 관심분야도 다양하다.》

▽손맛이 느껴지는 카메라〓프리랜서 사진작가인 안욱환씨(27)는 요즘 러시아제 로모 카메라로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졌다. 구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가 첩보용으로 개발한 고성능 유리 렌즈를 장착한 이 카메라는 플래시 없이도 밤 사진을 선명하게 찍고, 중심의 색을 진하고 강하게 표현하는 ‘터널 이펙트(Tunnel Effect)’ 때문에 따뜻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처음 봤을 때는 모양이 구식이어서 싸구려 카메라인 줄 알았어요. 그러나 실제로 사진을 찍어보니 디지털 카메라나 일반 고급 카메라로는 찍을 수 없는 풍부한 색감과 몽환(夢幻)적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안씨처럼 로모 카메라의 매력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스스로를 ‘로모그래퍼(Lomographer)’라고 부르며 각종 동호회를 만들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로모 동호회인 ‘로모이즈낫로모(Lomo is not Lomo)’ 회원인 정윤미씨(22·이화여대 사회체육학과 3년)는 “로모그래퍼 가운데에는 웹디자이너 등 첨단 디지털 기기들을 다루는 사람들이 많지만 칼 같은 디지털 사진보다는 흐릿하면서도 뭔가 완벽하지 못한 로모 사진에 더 매력을 느낀다”며 “아무런 제한 없이 ‘즐겁게 찍는다’는 로모 문화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로모는 일반 카메라 매장에서는 구입할 수 없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장에서 수작업으로 생산되기 때문. 생산량은 연간 2만대 정도. 따라서 로모를 가지려면 로모 코리아 사이트(www.lomo.co.kr)에 접속해서 인터넷 주문을 하면 1주일 안에 집으로 배달해준다.

가격은 26만4000원.

▽따뜻함이 깃든 소리〓진공관앰프 자작 동호회의 회원인 김계중씨(40·회사원). 앰프 회로도와 부품을 찾아 청계천과 용산 전자상가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닌 지 올해로 8년째 되는 진공관 앰프 마니아다.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족(族)으로 남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만 진공관 앰프의 따뜻한 음색에 반했죠. 빨갛게 달아오른 진공관을 보며 음악을 감상하는 것만큼 멋진 여가는 없습니다.”

중장년층 일색이던 진공관 앰프 마니아의 연령층도 20∼30대로 점차 확대되는 등 다양해지고 있다. ‘진정한 아날로그음(音)’을 찾기 위해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 이들의 특징. 이들은 인터넷과 PC통신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동호회를 구성, 회로도와 부품 구입처 등 진공관 앰프에 관한 각종 정보를 공유해 나간다.

자작 진공관 앰프에 관한 인터넷 사이트(diyaudio.co.kr)를 운영하는 박창영씨(30·대학원생)가 대표적 인물.

박씨는 “같은 아날로그 음이라도 트랜지스터 앰프의 소리는 ‘차갑다’는 느낌 때문에 장시간 듣기에 부담스럽지만 진공관 앰프는 투박하지만 온기가 넘친다”며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진공관 앰프를 만드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송진흡·차지완기자>jinhup@donga.com

▼전문가 분석/왜 아날로그인가▼

디지털 개념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아날로그 기기에 대한 이례적인 ‘동경’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급격히 변화하는 산업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내면적 불안감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정신과 이창욱 교수는 “현대인들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 보면 어느 순간 ‘뭔가 뒤떨어지고 있지 않나’하는 불안감을 느끼게 마련”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좀더 푸근하고 인간적인 대안을 찾게 되고, 그 종착지는 ‘복고 상품’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인터넷의발달로정보유통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 같은 ‘과거 회귀’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된다는 것이 이 교수의 분석이다.

이 교수는 “의학적으로는 인간의 잠재 의식속에서 급격한 변화에 대해 반발하는 ‘반동형성(reaction-formation)’이 나타난 결과”라며 “현재 복고 열풍을 주도하는 계층이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층이라는 것은 아날로그에 대한 동경이 단순히 옛 것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성을 돋보이기 위한 젊은층의 자기 표현 수단이란 해석도 있다. 연세대의대 신경정신과 민성길교수는 “현대사회가 기계화 평준화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찾고 싶거나 자기의 개성을 돋보이기 위한 행동으로 희소 가치가 있는 아날로그 상품을 찾는 사례가 많다”며 “자기 주장이 강한 젊은이들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송진흡기자>jinhup@donga.com

▽로모 카메라 관련 홈페이지

그사람(www.gsaram.com)〓다음넷의 로모카페(로모 이즈 낫 로모) 총무인 안욱환씨의 개인 홈페이지.

로모코리아(www.lomo.co.kr)〓로모카메라 한국 총판인 로모 코리아 홈페이지.

로모인터내셔널(www.lomo.com)〓로모카메라를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로모그래픽 인터내셔널 소사이어티의 홈페이지.

▽주요 진공관 앰프 자작 홈페이지

한국진공관앰프자작동호회(www.tubeamp.net)〓1달에 1회 자작 앰프발표회. 진공관 앰프 제작에 관련된 회모 및 부품 정보 제공.

박창영씨 홈페이지(diyaudio.co.kr)〓진공관 앰프 공동 제작 정보, 각종 관련 사이트 링크가 있음.

실바웰드(www.silvaweld.com)〓진공관 앰프만 생산하는 전문업체인 실바웰드사의 홈페이지.

소리전자(soriaudio.com)〓진공관 소켓 케이스 등 진공관 앰프의 각종 부품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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