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세상]"엄마! 내 김밥은…"

  • 입력 2001년 7월 24일 19시 03분


교단경력 10년째인 중학교 교사 L씨(33·여). 외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영종도 갯벌체험을 가기로 한 20일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계란, 소시지, 시금치, 당근, 노란 무 등을 곱게 싸 김밥도시락 두 개를 만들었다. 유치원 선생님께 드릴 것 하나. 아들용 김밥은 한 입에 쏙 들어가도록 어른 엄지손톱만하게 말았다.

오전 8시쯤 잔뜩 찌푸린 하늘이 장대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잦아들었지만 전날 잠들기 전 ‘비오지 말게 해주세요’라며 기도까지 했던 아들의 얼굴엔 먹구름이 끼었다.

L씨, “어쩌지? 비 때문에 오늘 못 갈 것 같네.”

남편이 끼어들었다. “지금은 거의 안 오는데?”

L씨, 자신있다는 듯 “교직 10년인데…. 이 정도면 정상수업이야. 자 우리 싸놓은 도시락으로 아침 먹자.”

아내의 ‘권위’에 눌려 몇 점 집어먹다 ‘조심조심’ 유치원에 전화를 건 남편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거봐! 간대잖아.”

L씨의 아들. 순간 얼굴이 환해졌다가 곧 울상이 됐다. “엄마, 도시락은?”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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