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재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풍납토성 내부 주거지 발굴 보고서’에서 이같은 의견을 내놓아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백제사 연구의 최대 미스테리였던 하남 위례성의 실체가 밝혀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동안 풍납토성이 위례성일 것이란 견해가 있었지만 1997년부터 이 곳을 발굴해온 공신력있는 국립 발굴연구기관인 문화재연구소가 이같은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각별하다.
이번 발굴보고서는 2권으로, 102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1권엔 초기 백제시대의 대형 주거지 19기 등 유구 90여기와 1200여점에 달하는 각종 중요 유물에 관한 분석과 관련 도면이, 2권엔 관련 사진 1600여장이 실려 있다.
문화재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기원전 1세기부터 이곳에 주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이후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으로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는 5세기말까지, 즉 한성 백제의 전기간에 해당하는 주거지와 유물을 대량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유적의 층위와 주거지 유물의 특성 등을 토대로 시기를 4기로 나누었다. 1기는 기원전 1세기∼서기 2세기 전후, 2기는 2세기 전반∼3세기 중반, 3기는 3세기 중반∼4세기 중반, 4기는 4세기 중반∼5세기 말.
연구소는 다양한 분석을 바탕으로 3세기 전후 이전에 풍납토성의 축조가 완료됐고 당시 풍납토성과 백제의 위상이 대단했다고 보고 있다. 풍납토성 내부 주거지의 규모가 길이 10m, 폭 7m 내외로 지금까지 확인된 백제 시대 유적 중 가장 크고 정교하다는 점, 토기 기와 등이 매우 고급스럽다는 점, 중국계 도자기가 출토된 점 등으로 보아 당시 백제는 고대국가로서의 완전한 기틀을 마련하고 중국과 활발히 교류했고 그 근거지가 바로 풍납토성이었다는 견해다.
또하나의 성과는 풍납토성 3기의 유물이 인근에 위치한 몽촌토성 1기의 유물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한 점. 풍납토성이 몽촌토성보다 이전에 축조됐음을 의미하고 따라서 몽촌토성이 풍납토성보다 앞선다는 일부 학설은 수정될 수밖에 없게 됐다.
문화재연구소의 신희권 학예연구사는 “출토 유물이나 입지 등으로 보아 몽촌토성은 군사적 성격이 강하다”면서 “풍납토성은 지금까지 알려진 한성백제시대 유적 중 가장 시기가 빠르고 주거지의 규모나 출토 유물 면에서도 그 위상이 가장 높은 유적이다. 이제 초기 백제의 주성(主城)은 단연 풍납토성”이라고 말해 풍납토성이 초기 백제의 왕성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