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순의 대인관계 클리닉]"잘 하려고 애썼는데…"

  • 입력 2001년 7월 31일 20시 07분


30대 후반의 박모씨. 요즘 사는 게 재미없다. 누구에게나, 어떤 일에나 최선을 다하려 애쓰며 살아왔는데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최소한의 격려는커녕, 다같이 ‘네가 지겹다’며 시큰둥해 할 뿐이다.

그는 가능한 한 매일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리고, 주말마다 찾아뵙고 외식도 시켜드리려고 애쓴다. 처가쪽에도 비슷하게 신경을 쓰는 편이다. 아내를 위해 집안일도 거들어주고, 아이와도 시간을 같이 보내려 한다. 직장 상사와는 함께 운동을 한다. 친구들이나 후배들도 챙기려고 애쓰는 편이다.

스스로 꽤 대견하게 잘해내고 있다는 생각에 흐뭇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단체로 아니란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뭐, 그다지 잘못된 건 없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다 잘 지내려고 한 것, 또 잘 지낼 수 있다는 환상을 품은 것 외엔. 그 환상 덕분에 그는 늘 갈팡질팡이었다.

사람들이 지겨워하고 화를 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아내가 주말에 친정에 가자고 하면 갑자기 부모님이 걸린다. 그래서 안돼, 이번엔 부모님한테 가야지 한다.

친구들이 전화해서 한잔하자고 하면 후배들이 떠오른다. 자기도 모르게 ‘후배들 챙겨야 해’ 하고 만다. 그렇다고 말한 대로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막상 후배들과 약속을 하고 나면 이번엔 친구들 전화 거절한 게 생각나 부랴부랴 선약을 취소하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하다. “또 시작이냐? 이미 너 잊어버리고 우리끼리 한잔하기로 했다.”

여러 역할을 다 잘해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지나친 책임감을 부여했다. 사람은 누구나 책임감이 너무 크면 거기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그걸 인정하기는 싫다. 결국 책임감과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 죄책감과 당위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보면 행동도 따라서 일관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자기 역할을 100% 잘하는 사람은 없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다 기쁘게 해 줄 수는 더더욱 없다. 먼저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순서대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게 상대방에게 변명처럼 들리고 상처를 줄까 봐 경계한다. 그러나 사실은 모호한 태도가 상대방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www. mind-op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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