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다니는 아들 녀석이 못하게 해도 자꾸 ‘고추’를 방바닥에 비벼대요.”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는 당혹스러운 고민들.
‘동아일보 주부 E&B(Education & Breeding) 클럽’은 세 번째 좌담의 주제를 성교육으로 정했다.
김유진 손미선 이지영 최정숙 추은영씨(가나다 순)는 7월 25일 동아일보사 14층 회의실에서 생생한 경험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성교육의 해법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2시간 가까운 토론 끝에 이들은 △어른들이 먼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을 것 △아빠도 성교육의 주체가 될 것 △자녀와 끊임없이 대화할 것 등 몇 가지 의견을 같이했다.》
▽김유진〓오늘 주제가 성교육이라 ‘아이가 겨우 갓 두 돌이 지났는데 해당 사항이 없는 건 아닐까’라고 걱정했어요. 하지만 갓난애인 줄만 알았던 아이가 자기 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걸 보니 벌써 때가 된 것 같더라고요.
▽손미선〓맞아요. 아이들이 ‘쉬’를 가리고 남녀의 차이를 알아갈 때부터 성교육을 시작해야 한대요. 그 시기는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아요. 우리 애도 세 살 땐가 목욕을 마친 뒤 “창피하니까 빨리 옷을 입혀달라”고 하더라니까요.
▽이지영〓성교육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전에 유치원을 운영할 때 ‘중요한 부분’을 방바닥이며 책상에 비비는 애들 때문에 꽤 당황했어요. 일종의 자위행위죠. 부모가 미리 “네 몸이 얼마나 소중한 줄 아니?”라고 가르쳤더라면….
▽최정숙〓하지만 제대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라 한계를 느끼는 부모도 많다고 보는데요. 아직까지 우린 ‘성(性)’이라면 부끄럽고 더럽고 감추고 싶다는 느낌부터 드는 게 사실이잖아요.
▽손〓그래요. 중학교 들어가서야, 그것도 가정 가사 시험에 대비해 성교육을 받기 시작한 거죠. 남학생들은 자기네들끼리 ‘왜곡된 성지식’이라도 주고받았지만 여학생들은 알면서 모르는 척, 모르면서 아는 척하다 보니 점점 더 성교육에서 멀어졌어요.
▽최〓요샌 학교 어머니회에서 전문 강사를 초빙해 성교육을 하기도 한다는데 늦었지만 정말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먼저 배워야죠. 선정적인 여성잡지가 잘 팔리는 것도 어른들 성교육이 잘못 돼서 그런 거예요.
▽추은영〓잡지광고를 보면 정말 낯뜨거워요. 사실 내용은 별 것도 아닌데 광고 카피를 화끈하게 뽑아야 잘 팔린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요. ‘특종! ○○○ 독점인터뷰’, ‘여름밤 섹스 100% 즐기기’ 이런 거 있잖아요.
▽이〓그래도 제대로 된 성교육 교재들이 잇따라 출간되는 것은 참 다행이네요. 몸이야기를 다룬 책들은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이에요. 전엔 괜히 감추려다 엉뚱한 호기심만 불러일으켰거든요. 놀이터에서 놀 때 이상한 어른이 “귀엽다”며 여기저기 만지면 똑 부러지게 “싫어요”라고 말하라는 등 구체적인 예를 들어 놓은 책들도 많아요.
▽최〓책도 책이지만 인터넷도 잘 이용하면 큰 도움이 돼요. 검색어에 ‘성교육’을 집어넣고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몽정, 초경, 콘돔 사용법 등 알짜 정보가 가득한 상담 사이트들이 부지기수예요.
▽김〓하지만 인터넷에서 잘못된 지식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요즘 초등학생들은 인터넷 도사가 돼 음란물도 금방 찾아낸다는데요.
▽최〓음란물 차단프로그램을 설치할 수도, 컴퓨터를 거실에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부모의 보살핌이 첫 번째겠죠. 음란물을 처음 본 아이들은 얼마나 충격을 받겠어요.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 혹시 아이 주변에 해로운 환경이 있진 않은지 관심 있게 둘러봐야 해요.
▽손〓이제 아빠도 성교육의 전면에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남자 아이는 7∼8세만 되면 이미 엄마와 멀어진다고 하더라고요. 남자들끼리 통하는 게 있다나요? 우리 아이만 해도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 가끔 서먹서먹해질 때가 있어요.
▽추〓하지만 대부분의 아빠들은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아요. 별 것도 아닌 걸로 야단치면 아이는 자칫 ‘성은 더러운 것, 금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빠를 성교육의 현장으로 끌어들일 묘안은 없을까요?
▽손〓우리는 온 가족이 함께 목욕하는 방법을 써봤어요. 처음엔 아빠가 더 부끄러워하더니 익숙해지니까 자연스럽게 아들의 성교육 교사 노릇을 톡톡히 하지 뭐예요. 다들 ‘목욕요법’을 쓰지 않나요?
▽(누군가)〓우리는 욕실이 좁아서….
▽최〓아이들, 특히 딸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부모는 ‘혹시 못된 남자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매사에 불안해지죠.
▽추〓진짜 ‘조금’만 자라면 그렇다고 하던데요. 요즘엔 초등학교 3, 4학년만 돼도 생리를 시작하는 여학생들이 많대요. 근데 그 뒤처리를 하려고 점심시간에 학교에 가는 엄마들도 있다는 얘길 듣고는 좀….
▽손〓몸은 다 자랐지만 정신이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딸에게 수영을 가르칠 때는 초등학교 2학년 이전에 다 끝낸다는 게 엄마들의 ‘철칙’이에요. 코치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나요?
▽이〓또 있잖아요. 오빠 앞에선 절대 치마를 입지 말 것이며, 집에 단 둘이 있지도 말 것이며….
▽추〓그런 점에서 성교육뿐만 아니라 ‘성 역할 교육’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딸에게도 성교육은 시켜야 하지만 아들이라면 더 철저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들은 안심해도 된다는 엄마들도 있는데 옳지 않아요.
▽손〓요즘 중학교에선 남녀를 서로 바꿔 성교육을 실시하는 시간도 있다고 들었어요. 일부 학부모들은 “우리 아들이 배란주기를 알아서 뭐 하느냐”고 말하기도 한다지만 성 역할 교육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최〓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혼란을 겪는 대학생들도 문제예요. 지난해 대학생 딸아이와 성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남녀관계, 임신, 낙태 등 대학생들의 현실을 들어보니 정말 심각하더라고요.
▽김〓그래서 ‘대학 들어갈 때는 혼자였는데 졸업은 3명이 한다’는 우스갯말도 있잖아요.
▽손〓캐나다에 연수를 갔다 돌아온 중고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걸핏하면 파티를 하는데 그 자리에 꼭 학부모 대표와 경찰이 낀다는 게 흥미로웠죠. 분위기가 고조돼 남녀 학생들이 도를 넘는 행동을 하면 이들이 개입하고 학생들도 “미안합니다” 하며 순순히 받아들인다고 해요. 외국은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나 봐요.
▽김〓얼핏 ‘간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부모가 대화를 통해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거라고 봐야죠. 항상 엄마, 아빠에게 모든 걸 다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요.
▽이〓결국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가치관을 만들어주는 게 부모가 할 일이에요. 성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도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김〓오늘 얘길 들어보니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사춘기에 용솟음치는 성 에너지를 분출하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 아니에요?
▽이〓운동으로 푸는 게 제일 좋대요. 전문가들은 특히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농구, 축구 등을 권장해요. 성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전환하는 거죠. 자위행위를 하는 유치원생들도 주로 내성적인 애들이 많아요.
▽최〓요즘 주5일 근무로 나라가 시끄럽던데 잘 모르지만 주5일 근무, 주5일 수업을 하면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게 한 가지 좋은 점 아니겠어요?
<정리〓정경준·김현진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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