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E&B클럽]'자녀의 성교육' 좌담

  • 입력 2001년 7월 31일 20시 10분


《“초등학생 딸이 쓰는 컴퓨터의 ‘즐겨찾기’에 음란사이트가 북마크돼 있는데….”

“유치원 다니는 아들 녀석이 못하게 해도 자꾸 ‘고추’를 방바닥에 비벼대요.”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는 당혹스러운 고민들.

‘동아일보 주부 E&B(Education & Breeding) 클럽’은 세 번째 좌담의 주제를 성교육으로 정했다.

김유진 손미선 이지영 최정숙 추은영씨(가나다 순)는 7월 25일 동아일보사 14층 회의실에서 생생한 경험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성교육의 해법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2시간 가까운 토론 끝에 이들은 △어른들이 먼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을 것 △아빠도 성교육의 주체가 될 것 △자녀와 끊임없이 대화할 것 등 몇 가지 의견을 같이했다.》

▽김유진〓오늘 주제가 성교육이라 ‘아이가 겨우 갓 두 돌이 지났는데 해당 사항이 없는 건 아닐까’라고 걱정했어요. 하지만 갓난애인 줄만 알았던 아이가 자기 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걸 보니 벌써 때가 된 것 같더라고요.

▽손미선〓맞아요. 아이들이 ‘쉬’를 가리고 남녀의 차이를 알아갈 때부터 성교육을 시작해야 한대요. 그 시기는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아요. 우리 애도 세 살 땐가 목욕을 마친 뒤 “창피하니까 빨리 옷을 입혀달라”고 하더라니까요.

▽이지영〓성교육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전에 유치원을 운영할 때 ‘중요한 부분’을 방바닥이며 책상에 비비는 애들 때문에 꽤 당황했어요. 일종의 자위행위죠. 부모가 미리 “네 몸이 얼마나 소중한 줄 아니?”라고 가르쳤더라면….

▽최정숙〓하지만 제대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라 한계를 느끼는 부모도 많다고 보는데요. 아직까지 우린 ‘성(性)’이라면 부끄럽고 더럽고 감추고 싶다는 느낌부터 드는 게 사실이잖아요.

▽손〓그래요. 중학교 들어가서야, 그것도 가정 가사 시험에 대비해 성교육을 받기 시작한 거죠. 남학생들은 자기네들끼리 ‘왜곡된 성지식’이라도 주고받았지만 여학생들은 알면서 모르는 척, 모르면서 아는 척하다 보니 점점 더 성교육에서 멀어졌어요.

▽최〓요샌 학교 어머니회에서 전문 강사를 초빙해 성교육을 하기도 한다는데 늦었지만 정말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먼저 배워야죠. 선정적인 여성잡지가 잘 팔리는 것도 어른들 성교육이 잘못 돼서 그런 거예요.

▽추은영〓잡지광고를 보면 정말 낯뜨거워요. 사실 내용은 별 것도 아닌데 광고 카피를 화끈하게 뽑아야 잘 팔린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요. ‘특종! ○○○ 독점인터뷰’, ‘여름밤 섹스 100% 즐기기’ 이런 거 있잖아요.

▽이〓그래도 제대로 된 성교육 교재들이 잇따라 출간되는 것은 참 다행이네요. 몸이야기를 다룬 책들은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이에요. 전엔 괜히 감추려다 엉뚱한 호기심만 불러일으켰거든요. 놀이터에서 놀 때 이상한 어른이 “귀엽다”며 여기저기 만지면 똑 부러지게 “싫어요”라고 말하라는 등 구체적인 예를 들어 놓은 책들도 많아요.

▽최〓책도 책이지만 인터넷도 잘 이용하면 큰 도움이 돼요. 검색어에 ‘성교육’을 집어넣고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몽정, 초경, 콘돔 사용법 등 알짜 정보가 가득한 상담 사이트들이 부지기수예요.

▽김〓하지만 인터넷에서 잘못된 지식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요즘 초등학생들은 인터넷 도사가 돼 음란물도 금방 찾아낸다는데요.

▽최〓음란물 차단프로그램을 설치할 수도, 컴퓨터를 거실에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부모의 보살핌이 첫 번째겠죠. 음란물을 처음 본 아이들은 얼마나 충격을 받겠어요.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 혹시 아이 주변에 해로운 환경이 있진 않은지 관심 있게 둘러봐야 해요.

▽손〓이제 아빠도 성교육의 전면에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남자 아이는 7∼8세만 되면 이미 엄마와 멀어진다고 하더라고요. 남자들끼리 통하는 게 있다나요? 우리 아이만 해도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 가끔 서먹서먹해질 때가 있어요.

▽추〓하지만 대부분의 아빠들은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아요. 별 것도 아닌 걸로 야단치면 아이는 자칫 ‘성은 더러운 것, 금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빠를 성교육의 현장으로 끌어들일 묘안은 없을까요?

▽손〓우리는 온 가족이 함께 목욕하는 방법을 써봤어요. 처음엔 아빠가 더 부끄러워하더니 익숙해지니까 자연스럽게 아들의 성교육 교사 노릇을 톡톡히 하지 뭐예요. 다들 ‘목욕요법’을 쓰지 않나요?

▽(누군가)〓우리는 욕실이 좁아서….

▽최〓아이들, 특히 딸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부모는 ‘혹시 못된 남자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매사에 불안해지죠.

▽추〓진짜 ‘조금’만 자라면 그렇다고 하던데요. 요즘엔 초등학교 3, 4학년만 돼도 생리를 시작하는 여학생들이 많대요. 근데 그 뒤처리를 하려고 점심시간에 학교에 가는 엄마들도 있다는 얘길 듣고는 좀….

▽손〓몸은 다 자랐지만 정신이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딸에게 수영을 가르칠 때는 초등학교 2학년 이전에 다 끝낸다는 게 엄마들의 ‘철칙’이에요. 코치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나요?

▽이〓또 있잖아요. 오빠 앞에선 절대 치마를 입지 말 것이며, 집에 단 둘이 있지도 말 것이며….

▽추〓그런 점에서 성교육뿐만 아니라 ‘성 역할 교육’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딸에게도 성교육은 시켜야 하지만 아들이라면 더 철저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들은 안심해도 된다는 엄마들도 있는데 옳지 않아요.

▽손〓요즘 중학교에선 남녀를 서로 바꿔 성교육을 실시하는 시간도 있다고 들었어요. 일부 학부모들은 “우리 아들이 배란주기를 알아서 뭐 하느냐”고 말하기도 한다지만 성 역할 교육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최〓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혼란을 겪는 대학생들도 문제예요. 지난해 대학생 딸아이와 성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남녀관계, 임신, 낙태 등 대학생들의 현실을 들어보니 정말 심각하더라고요.

▽김〓그래서 ‘대학 들어갈 때는 혼자였는데 졸업은 3명이 한다’는 우스갯말도 있잖아요.

▽손〓캐나다에 연수를 갔다 돌아온 중고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걸핏하면 파티를 하는데 그 자리에 꼭 학부모 대표와 경찰이 낀다는 게 흥미로웠죠. 분위기가 고조돼 남녀 학생들이 도를 넘는 행동을 하면 이들이 개입하고 학생들도 “미안합니다” 하며 순순히 받아들인다고 해요. 외국은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나 봐요.

▽김〓얼핏 ‘간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부모가 대화를 통해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거라고 봐야죠. 항상 엄마, 아빠에게 모든 걸 다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요.

▽이〓결국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가치관을 만들어주는 게 부모가 할 일이에요. 성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도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김〓오늘 얘길 들어보니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사춘기에 용솟음치는 성 에너지를 분출하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 아니에요?

▽이〓운동으로 푸는 게 제일 좋대요. 전문가들은 특히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농구, 축구 등을 권장해요. 성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전환하는 거죠. 자위행위를 하는 유치원생들도 주로 내성적인 애들이 많아요.

▽최〓요즘 주5일 근무로 나라가 시끄럽던데 잘 모르지만 주5일 근무, 주5일 수업을 하면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게 한 가지 좋은 점 아니겠어요?

<정리〓정경준·김현진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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